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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Oct 19. 2023

우렁신랑 소환


이미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나는 우렁각시랑 산다. 

아! 성별에 맞춰 불러줘야 하니 우렁신랑이라 해야 하나? 

저녁도 차려주고 간식도 만들어주는 우렁신랑은 저녁을 다 먹고는, 우렁은 안 들어간 된장을 끓였다. 거기까지면 딱 좋았을 텐데 어머님께서 직접 수확하신 내 팔뚝만 한 고구마를 가져다 껍질을 까고 기다랗게 잘라 휴게소에서 팔 것 같은 고구마튀김까지 했다. 된장찌개는 그렇다 쳐도 저렇게 번외로 자꾸만 뭘 만들면 내가 무척 미안해지는데 이를 어쩐다. 


나는 설거지 담당이다. 

결혼하고 열심히 반찬이며 요리를 해 왔지만 장장 한 시간 넘게 요리한 것을 먹는 건 5분 만에 먹어버리는 서 씨들 때문에 무척 허무하고 허탈했더랬다. 잘 먹어주어 고마웠지만 그것과 별개로 허무한 건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음식을 만드는 중간중간 냄새를 맡고 나면 내가 한 음식은 잘 안 먹히기 마련이었다. 기껏 음식을 만들어 놓고 나는 "치킨 시켜 먹을까?"라는 대사를 굳이 입 밖으로 꺼내니 남편에게 면박을 받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젠 남편이 주방에서 뚝딱뚝딱 음식을 만드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이 되었다. 나는 남편이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고, 남편은 뜬금없이 배달시키자는 이야기를 안 들어서 좋고, 음식을 만들어 주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난 또 열심히 설거지를 하면 서로에게 쓴소리를 할 일도 없으니 흡족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러한 상황인데 

지금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까지만 완성했다면 딱인데 

이런... 고구마튀김은 반칙이다. 


상대가 일을 더 많이 하면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설거지만 해서 될 게 아닌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빚을 지고 만 나는, 설거지를 하며 어디 더 할 일이 없나 두리번두리번 둘러본다. 뭘 해야 대충 플러스 마이너스 쌤쌤이가 될까. 오호라. 나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지저분한 가스레인지. 튀김을 열심히 튀긴 남편의 행적이 가스레인지에 고스란히 남았다. 기름으로 코팅은 물론이고 튀겨지다 말고 바깥 구경이 하고 싶었는지 튕겨 나온 고구마 찌꺼기가 남아 있다. 옳거니, 저거다. 수세미에 남아 있던 세제물을 조금 묻혀 가스레인지 상판을 닦았다. 예전이었다면 우선해야 하는 급한 집안일을 하느라 녹초가 되어 가스레인지는 닦지도 못하고 넘어갔을 텐데, 그렇게 미루다 보면 한 번씩 주방에 들어와 보던 남편이 보다 못해 가스레인지를 나 대신 청소해 준 적도 있었는데 말이다. 남편이 공들여 닦아 반지르르 윤기가 나는 가스레인지를 보며 마음은 상쾌했지만 나의 치부를 들킨 것 같아 민망하기도 했었는데 하는 기억을 떠올리니, 수세미로 뽀독뽀독 문지르는 지금의 나를 보며 참 재미있는 인생이다 싶었다. 


마누라가 살림을 좀 놓으면 어떠랴. 

마누라가 놓친 살림 중 거슬리는 건 남편이 좀 더 하고 그걸 보는 마누라는 또 미안한 마음에 다른 일을 더 찾아서 하고 그러면 되는 것 아닐까. 서로 바통을 주고받으며 질리지 않고 물리지 않도록 번갈아 가며 집안일을 하니 지루하지도 않고 살림이 더 재미있어진 느낌이다.


다음번엔 또 어디를 청소할까~ 

남편의 콧노래처럼 흥얼흥얼 나도 콧노래를 불러 볼까나~


보자 보자, 밀대로 거실 청소 중인 남편은 지금 무슨 콧노래를 부르고 있나 귀 기울여 들어보니 박현빈을 소환해 버렸네?


샤방샤방~ 샤방샤방~

아주 그냥 끝내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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