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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Oct 27. 2023

초6 딸의 생일선물은 이걸로 정했다

초등학교 최고학년인 6학년 딸내미의 생일이다.


생일선물로 무얼 갖고 싶으냐 물었더니 배시시 웃으며 다가와서는 내 귀에 속삭여준다.

"돈은 어때?"


하아... 벌써 자본주의의 맛을 알아버린 딸. 하지만 무심함이 하늘을 찌르는 이 엄마가 누굴 탓하리. 미리 챙겨야 할 선물을 준비하지도 않고 바로 전날 물어봤으니 이제 와 선물을 주문한다 해도 생일 당일날 선물을 받기는 글렀다. 딱 마음에 드는 선물은 아니더라도 생일선물이란 자고로 당일날 받아야 맛이거늘. 차라리 돈으로 달라는 말이 홀가분했다. 당일날 선물인 척 건넬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럼 얼마나 주어야 너도 만족, 나도 만족할 수 있을까 그 금액이 궁금해졌다.


"얼마를 원해?"




얼마면 되게쒀! 외치던 원빈의 비장미를 약간 섞어 물었는데 냉큼 답할 줄 알았던 아이가 웬일로 머뭇머뭇 댄다. 아, 그래 고민되겠지. 엄마가 얼마를 마음먹고 있을까부터 가늠해야 하니 망설여지겠지. 엄마는 자린고비도 울고 갈 정도의 금액을 예상하는데 자신은 뜬금없이 높은 금액을 말해 엄마의 빈정을 상하게 하면 아예 없던 일이 될 수 있을 테고, 그 반대의 경우로 턱없이 적은 금액을 말한다면 괜히 손해 보는 느낌이 들 테니, 그래서 사실 내가 먼저 딸에게 얼마를 원하냐고 물어본 것이기도 하다. 역시 나는 엄마이기 전에 너무나 약은 사람이라니까.


뜸을 너무 오래 들이는 딸내미. 머릿속으로 뇌를 요리 굴렸다가 조리 굴렸다가 데굴데굴 굴러가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리는 듯하다.


"너 밥 하뉘? 왜 이리 뜸을 들이는 거여?"


"음... 엄마가 정해 줘."


역시 협상은 어려운 일인 거겠지.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지.


"뭐~ 엄마가 정하면 정한 대로 너는 그대로 따를 거뉘?

 엄마가 500원으로 정하면 넌 그것만 받고 말 거야?"


초강수를 던졌다. 최저금액 부르기! (500원은 너무 심했나.)

그랬더니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 딸. 맨 처음 현금으로 순순히 주겠다 할 때 설렜던 표정은 온데간데없다. 안 되겠다 싶었던지 요 녀석도 나에게 초강력 멘트를 날렸다.


"칫. 엄마는 그럼 내가 200만 원 달라면 줄 거야?"


히야~~ 요놈 보소. (년은 너무 욕 같으니 이럴 땐 놈으로 바꾸는 편이다.)

이 아이를 키워 오면서 역대급으로 가장 놀라운 대사이기도 하고 뭐 이런 놈이 내 뱃속에서 나왔나 하는 마음에 유전자 탓을 하느라 말을 잇지 못하고 3시간 같은 정적이 약 3초간 흘렀다.


이게 아니다 싶었던지 딸아이는 얼른 웃으며 "에이, 진짜는 아니고 말이 그렇다고 말이." 하며 수습을 하고, 이제 곧 없던 일로 하자고 엄마가 말할까 봐 얼른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딸은 자러 갔고, 남편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덜렁 3만 원을 주란다. 하아... 이 냥반 요즘 시세를 이리 몰라서야. 그래도 6학년인데 친구들 만나 마라탕도 마시고, 탕후루도 씹고 그래서 마라탕후루 코스에다가 다이소에서 문구나 완구 몇 개 사면 끝나는 금액만 주고 땡 치라고? 역시 남편과 상의는 이득이 없다. 내가 별로 명쾌한 해답을 얻지 못한 듯 하니 나에게 묻는 남편. 얼마를 주려고 그러느냐 결혼식 축의금도 10만 원 하는데 이제 곧 중학생이 될 아이인데 공부해야지 돈이 왜 필요하냐는 앞 뒤 논리가 조금 안 맞는 이상한 소리를 한다. 공부하는 중학생은 뭐 돈이 필요 없나? 정말 미스터리 냥반...


모두 잠든 밤, 고민이 시작되었다.

사랑하는 딸내미 생일이라고 무한정 많은 돈을 주는 것도 버릇이 나빠질 수 있고, 그렇다고 너무 쪼잔하게 주는 건 기대에 못 미칠 테니 차라리 안 주는 것만 못하다. 하지만 생일이 평생에 한 번이 아닌데 이번 생일에 너무 많이 줘 버리면 다음 생일, 그리고 또 다음번 생일이 거듭될수록 부담이 커진다.




아침에 일어나 귀여운 편지봉투 하나를 골라 5만 원을 넣었다.

1만 원권으로 다섯 장을 넣으면 약간 도톰한 손맛을 느낄 수 있을 텐데 하필 1만 원권이 다섯 장이 안 된다. 봉투를 딸 책상 위에 올려 두고 나왔는데 아무래도 너무 얇은 게 내 마음이 다 허전해져 온다. 도로 들어와 내 지갑에서 1만 원권 두 장을 더 꺼내 신사임당 위에 포개 넣어주었다.


이제 마음이 좀 푸근하다. 역시 선물은 받는 기쁨도 좋지만 주는 기쁨도 참으로 좋다.


딸을 불러


"책상 위에 뭐 있더라?"


하고 낚시질을 했다.

책상으로 가더니 봉투를 보고 안을 들여다보더니 놀란 토끼눈으로 얼굴 표정은 설렘 그 자체였다. 딸의 기뻐하는 표정을 보고 나는 엄마미소가 자동으로 지어졌던 것 같다.


학교 가는 길.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는 딸에게 물었다.


"혹시 가방에 그 봉투 넣은 건 아니지?"

"응. 그럼. 학교에선 돈 쓸 일이 없어~"


당연한 걸 왜 물어보세요 하는 듯 대답하는 딸의 얼굴에 다시 한번 또 환한 미소가 보인다.


한석봉의 어머니 대사- 너는 글을 쓰거라. 나는 떡을 썰 테니- 가 떠오른다.

나도 따라 중얼중얼해 본다.


너는 학교 가서 공부 열심히 하거라. 이 어미는 돈을 열심히 벌 테니. ^^




*대문 이미지 출처. 그림쟁이 곰탱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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