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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Nov 22. 2023

좋은 머리는 뒀다 뭐하니

건조한 아들 피부 때문에 로션과 싸우는 중

아들의 뺨이 거칠거칠 허연 것이 올라오는 걸 보니 건조한 계절이 또 온 모양이다.

좀 더 어릴 때는 피부에 땀구멍도 없는 것처럼 백옥 같고 그렇게 좋을 수 없더니 어느 순간 가을만 되면 거칠어지는 피부는 어째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가을에는 산불을 조심하라는 이유가 건조하니까 그런 거였구나 하고 새삼 실감한다. 


작년보다 거칠어진 피부를 보면 마음이 참 아프다. 땀은 많이 흘리는데 물을 잘 안 마셔서 더 한 것 같지만, 엄마로서 뭘 잘못해서 아이 피부가 이런 것 같고, 내가 부족해서 아이가 그런 것 같고... 하지만 자책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별다른 방법도 없고 보습만이 살 길이라는 주워들은 말로 요즘은 로션을 달고 산다. 


그래서 요새 나의 유행어는 "로션 발랐어?"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들을 보면

"세수하고 로션 발랐어?"


아침밥 먹고 양치한 이후에

"로션 발랐어?"


하교 후에 반가운 아들을 보고는

"센터 들어가자마자 로션 발라~!"


저녁에 만나 반갑지만 

"우선 로션 발라~!"


아주 그냥 아들이라 부르고 "로션 발라."로 대화를 마무리한다.

이건 뭐 아들이 로션인지, 로션이 아들인지

아들을 사랑하는 건지, 로션을 사랑하는 건지.


출처. 셔터스톡


한데 로션이 치약 튜브처럼 손으로 꾹 눌러야 나오는 형태라 아직 조그마한 아들의 손으로는 좀 버거워 보인다. 게다가 절반쯤 사용한 로션은 세상 구경을 하기 싫은 건지 어지간해서는 밖을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로션과 실랑이를 하는 아들 대신, 엄마인 내가 나서서 로션 통을 잡고 거꾸로 세워 통의 머리를 왼쪽 손바닥에 대고 통통 쳐주었다. 아래로 내려오라고.

통통통통 친 후, 얼추 내려왔겠다 싶어 아들에게 로션통을 얌전히 건네주었는데, 혹시나 힘 조절을 못하고 통을 꾹 누르면 이번엔 반대로 또 너무 많이 나올까 싶어


"팍 나온다, 조심해."

라고까지 일러주었다.


하지만... 

팍 나오긴, 무슨...


내가 건네준 채로, 네가 받은 채로 뚜껑만 조심스레 열면 될 것을 로션을 도로 바로 세우는 아들. 으이그... 평소에 똑똑하다고 여겼는데 좋은 머리가 잠시 장식용으로 전락해 버리는 순간이다. 


오히려 아들은 이 엄마를 양치기 소년 바라보듯

"나오긴 뭐가 나와. 하나도 안 나와."

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다시 뚜껑을 덮고 내가 하던 모습을 그새 배워 로션을 통통 친다.  




양치기 소녀도 아니고 양치기 소년으로 몰린 나는(전청조도 아니고 뭐여)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한 마디 날렸다.


이놈아, 뒤집은 채로 그대~~ 로 뚜껑을 열어야지.

바로 세우면 로션이 도로 들어가 버리잖아.


넌 똥 쌀 때 물구나무서서 싸냐?

그게 잘 나오겠냐?


깔깔깔깔깔


물구나무서서 똥 싸는 모습을 아들이 상상해 버렸는지, 따라 웃지 않을 수 없는 아들 특유의 웃음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웃겨 죽겠다는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참을 수 없어 따라 큭큭 웃고 말았다. 

한바탕 웃고는 나는 다시 시범을 보여주고는 이번엔 내가 직접 아이 얼굴에 로션을 쓱쓱 발라주었다. 




아! 맞다. 

수분을 가두는 데는 로션보다 크림이랬지!

이 글을 쓰다가 떠올랐다. 역시 글이란 뇌를 계속 깨우니 글 쓰기의 중요성도 같이 느끼는 바이다. 

얼른 크림이나 장만하러 가야겠다. ^^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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