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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Nov 23. 2023

나는 설거지 방법이 틀렸고  남편은 방귀 방향이 틀렸다

내가 연예인이 나오는 쇼츠를 보며 웃을 때, 남편은 조신하게도 요리 레시피라든지 살림 노하우가 나오는 쇼츠를 본다.


살림에 부쩍 관심이 높아진 남편은 아마도 거기서 "설거지 제대로 하는 방법"을 접한 것 같다.

우리가 보통 하는 방식으로 설거지를 계속하다간 1년에 소주 한 컵 정도 양의 식기세제를 먹게 된다는 정보를 얻은 것이다. 사실 나는 그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다. 영상을 보면서 "아이고, 저런." 탄식을 하긴 했지만 그때뿐, 실전으로 돌아와 싱크대 앞에서 고무장갑을 끼면 언제 영상을 봤냐 싶게 기존에 하던 대로 수세미에 액체세제를 쭉 짜고 거품을 내어 그릇 하나하나 들고서 거품을 덕지덕지 묻히게 되는 것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실천으로 옮기기는 참 힘들다.


나와는 참 다른 남편.

처음부터 물에 세제를 한두 번 짤아 넣고 휘적휘적 흔들어 거품을 내고 그 안에 그릇을 넣어 불려 가며 슥슥 닦는 설거지방법을 보고 느낀 바가 많은 남편은 절대 그 방법을 어긴 적이 없다. 금연할 때도 그랬다. 첫 아이가 우리에게 온 걸 안 이후, 담배를 끊어야지 마음먹고는 단 하루 만에 담배를 딱 끊은 남편이니, 그것과 결이 비슷하다. 내 남편이지만 칼 같은 그의 성향을 때로는 존경하면서도 때로는 그 냉정함이 조금 무섭기도 하다.


그런 사람이니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미적지근한 내 행동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까. 같이 영상을 봤을 땐 분명 옆에서 소주잔에 세제를 짤아 넣어 진짜로 마시는 사람처럼 "으윽" 소리까지 낸 아내를 보았으니.

나에게 설거지 영상을 톡으로 보내 주기도 하고, 말도 해주고, 심지어 설거지 시범도 보여주었는데, 자신을 따라 하지 않는 아내를 보고 분명 속이 부글부글 끓었을 남편. 달라지지 않는 나를 보고 첫날, 이튿날은 "그러면 안 된다니까."라고 말하더니, 셋째 날은 이전과 같은 모습을 보면서 말도 하지 않고 내가 설거지하는 모습 자체를 쳐다보질 않는다.


그럼 나는 속절없이 마음이 편하기만 했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니다.

그냥 난 내 방식이 좋은데, 설거지하다가 또 남편이 나한테 와서 잔소리하는 건 아닐까 괜히 마음이 옴질옴질 콩닥콩닥 떨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노는 게 아니라 설거지라는 일을 하고 있는데도 대역죄인처럼 마음이 움츠러들고, 시골쥐처럼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있어야 했는데 어랍쇼? 남편이 아무 말도 안 한다. 분명 나는 남편이 알려준 대로 따라 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쓱 지나가고 괜히 뱃속 저 아래부터 휴 소리가 올라왔다. 꽉 막혔던 배수구가 쿨쿨 내려가듯 내 마음도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남편은 한쪽 눈을 질끈 감는 방법을 선택한 모양이다. 백날 이야기해 봐야 안 고쳐질 것이라는 걸 알고 그냥 포기한 느낌이랄까. 덕분에 나의 마음은 편안하다. :)


그렇다고 남편은 내 눈밖에 난 행동을 전혀 하지 않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사람은 신이 아니거늘 어찌 그럴 수 있을까. 밥 먹을 때 쩝쩝거리며 먹는 습관도 그대로,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데 내 쪽을 향해서 방귀를 뿡 뀌는 것도 그대로다. 방귀야 생리현상이니 어쩔 수 없다 해도 최소한 사람이 없는 방향을 향해 발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면박을 줘도 타이밍을 못 맞추는 건 한결같다. 그럼 난 어떻게 하느냐면 그 자리를 피하고 만다. 목마른 사람이 샘물을 찾는 것처럼, 그 자리에선 숨을 못 쉬겠다면 숨을 쉬어야 할 사람이 그 자리를 떠나는 게 차라리 빠르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관찰예능이 많은 요즘, 다른 부부들을 보면 서로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것 같다, 상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하는 불만 섞인 주장을 자주 접하곤 한다. 존중받아야 할 자신의 말을 무시당하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이 없지 싶으면서도 서로 자신의 말만 옳다고 우겨대다 결국은 영영 남남이 되어버리는 모습도 종종 본다.


한데 상대와 완전한 이별을 원치 않는다면 어느 정도 슬쩍 눈 감아 주는 건 어떨까.

눈 감아 준 상대가 고마우면 반대로 내 속이 부글부글 끓는 일이 있을 때 나도 상대를 한 번쯤 눈 감아주고 말이다. 그러니 때때로 보여도 보이지 않는 척, 들려도 들리지 않는 척하는 것도 행복한 일상 만들기의 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나저나 설거지 방법은 남편 말이 백번 맞으니 시나브로 고쳐가도록 해야겠다. ㅎㅎ




=한 줄 요약=

부부싸움을 원치 않으신다면 가끔은 눈을 지그시 감고, 가끔은 귀를 꼬옥 막아보세요. :)


이미지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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