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아 Nov 23. 2023

엄마, 미안해. 이번 수행평가는 <노력요함>이야.

초등 4학년 아들이 시무룩한 얼굴에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엄마, 내 가방 안에 수행평가.. 싸인 좀 해 줘. 파일 안에 있어. 미안해. 이번 수행평가는 노력요함이야..."

"응?"


흐음.. 매번 매우 잘함을 받아오던 아이라 기껏 실수한다 해도 잘함이겠지 싶었는데 보통도 아니고 노력요함이라니?


요즘 초등 아이들의 학교 평가는 네 개의 구간으로 나뉜다.

매우 잘함 / 잘함 / 보통 / 노력요함


7080 세대인 나 어릴 적 초등학교 다닐 때는 수우미양가로 평가를 받았는데 노력요함이라면 옛날 그 시절에 견주어 볼 때 "가"를 받았다는 이야기다. 난 여태껏 "가"를 받아본 적이 없다. 내가 제일 못하는 체육 과목도 아무리 바닥 점수라 해도 "미" 정도였지, "가"는 어떻게 받는지 알지 못한다. 초1 때 100미터 달리기에서 오른팔과 오른 다리가 같이 움직였다 하니 얼마나 가관이었을는지. 그러니 "미"도 감사했다. 그렇게 운동 젬병인 나도 "가"를 모르는데 어찌 내 아들은 "가"와 맞먹는 노력요함을 받아온 것일까. 그동안 학교 수업 시간에 집중도 안 하고 그저 놀기만 했다는 건가? 이해할 수 없었다.


당황한 티를 안 내려 노력했지만 살짝 내 얼굴은 어두워지는 느낌이다. 내 선에서 이해가 되는 범주를 벗어났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아들의 가방을 열어 수행평가 파일을 열며 물었다.


"무슨 과목인데?"

"수학이랑 사회.."


여전히 아들의 목소리는 침울하다. 표정도 한껏 우울모드다.


조심스럽게 수학과 사회 수행평가지를 꺼내 보았다. 앞장에 각각 한 문제씩 비가 내렸다. 노력요함 치고는 동그라미가 많네. 뒷장부터 난리가 났나 보군. 하고 뒷장을 넘기는데 응? 다 맞았다. 얼른 훑고 아래 평가란을 보았는데 뭐지? 매우 잘함에 체크가 되어 있다.


"아들~ 매우 잘함인데? =.="

어떻게 된 일인지 얼른 설명을 해라. 인간아. 하고 싶지만, 혹시 수학, 사회 과목이 아닌 다른 과목을 말한 건데 오해가 있었거나 혹시 내 말 한마디에 아들이 상처받을까 싶어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이거 뭐야?" 재차 물었더니...


써프라~~ 이즈~


라며 두 손바닥을 쫙 펴고는 얼굴에 가져다 대며 눈을 찡긋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이눔시키...

당했다... 오늘도.

아놔...

복수의 칼날을 갈아본다...



아들 수행평가지



*대문사진 출처.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설거지 방법이 틀렸고  남편은 방귀 방향이 틀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