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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Sep 25. 2023

콧노래의 필요

콧노래는 언제 부르는 건가 했더니

나는 또 자판을 토닥토닥거리며 때로는 퉁게퉁게 두드리며 일을 하는 중이다. 

주로 재택근무하는데 시간을 할애하지만, 가끔 브런치 글도 쓰고, 헤드라잇 글도 읽어보는 취미생활도 즐거우니 키보드 위에서 내 열 손가락은 신나게 춤을 춘다. 

내 엉덩이는 의자와 한 몸이 되어 내가 의자인지, 의자가 나인지 모르겠는데, 남편의 엉덩이는 가볍디가벼워 주방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분주하기만 하다. 식탁 위에 감자 몇 덩어리와 함께 냉동버터가 나와 있는 걸 보아하니 감자오븐구이가 오늘의 간식 메뉴인 것 같다. 감자를 뽀득뽀득 열심히 씻는 남편. 내가 앉은자리에서 고개만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이면 보이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자니 미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그리고 어디선가 

콧노래가 들려온다. 



집안일=여자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

혹은

여자=집안일 (여자라면 집안일을 해야 한다.)


여자로서 이 공식을 완전히 부정하긴 힘들다. 

다른 집에 비해 우리 집은 이 공식에서 벗어난 지 꽤 됐지만 그래도 아직 같지 않음(≠)을 써넣기는 힘들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힘들게 일하고 집으로 돌아오실 아빠를 위해 엄마는 늘 5분 대기조였다. 


미리 밥을 해서 밥주발에 밥을 머슴밥처럼 그득 퍼 담고는 주발에 꼭 맞는 짝꿍 뚜껑을 덮어다가 가장 뜨끈한 구들장 쪽으로 손을 더듬어 자리를 찾으면 신줏단지 모시듯 얌전하게 주발을 놓고 이불로 따뜻하게 덮어놓으셨다.   

푸세식이었던 변소(화장실이라는 신식 용어와는 매우 어울리지 않았던 구식이었기에 변소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에서는 말 그대로 용변만 볼 수 있던 공간이었으니 씻을 땐 항상 수돗가가 있던 마당에서 공개적으로 씻을 수밖에 없었는데, 퇴근하신 아빠가 웃통을 벗어던지고 원산폭격 자세를 취하면 엄마는 손잡이가 긴 바가지로 물을 가득 퍼담아 등허리부터 슬슬 부어 목까지 물이 흘러내리면 "으어~~~ 씨워언~~하다~"를 외쳤던 아빠. 

등목하기 쌀랑한 가을 날씨가 되면 엄마는 아빠가 집에 도착할 시간에 딱 맞춰 물을 미리 따끈히 데워서는 머리 감는 아빠 수월하라고 바가지로 머리물을 부어주었던...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었던 그 시절을 고스란히 보고 자란 때문인지 

결혼하면 나도 모든 집안일은 전부 내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남편은 신식 사고방식을 가진 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주방일이며 집안일에 구분을 두지 않았다. 방이 더러우면 본인이 걸레를 잡고, 설거지가 되어 있지 않으면 설거지를 하고, 맛있는 음식이 떠오르면 직접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때론 안주인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이 집에 내가 없어도 아무 문제없을 것 같은 그림이 그려져 씁쓸하기도 하다만 그건 내가 나 스스로 건강을 잘 챙겨 이 집에 내가 없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면 될 일이다. 


어찌 되었든 수많은 집안일을 두고 남편이, 이건 아내가 할 일, 이건 본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구분 짓지 않아 줘서 참 감사한 마음이다만 그래도 왠지 마음 한편은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무리 남녀평등의 시대라 하지만, 그래서 남자가 집안일을 도와주는 건 당연한 거라고 해도, 70퍼센트는  여자인 내가 하고, 30퍼센트는 남편이 해야 균형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내가 40퍼센트, 남편이 60퍼센트를 전담하는 상황이니 자꾸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재택근무를 나름 열심히 하는데도 왜 그런지 마음 깊숙한 곳에 미안한 마음은 참 가시질 않는다. 



들릴락 말락 또 들려오는 

흥얼흥얼 콧노래 부르는 소리. 



남편이 감자를 깎으며 콧노래를 부른다. 


나의 미안한 마음에 갑자기 날개가 솟아나서는 훨훨 날아가더니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내 사라져 버렸다. 

남편이 설마 날 위해 미안한 마음일랑 갖지 말라고 콧노래를 부러 흥얼거린 건 아니겠지만, 참 감사하고 고마운 생각이 든다. 


당신의 콧노래는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아 나를 늘 불안하게 만들었던 미안한 마음을 사라지게 해 주었으니. 


몸을 움직여 무엇을 만들어 낸다는 일이 마냥 신나는 일만은 아닐 텐데 늘 기쁜 마음으로 적막한 분위기에 해피바이러스가 퍼지도록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남편에게 참으로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이다. 



https://youtu.be/BnlD6rGmgGo?si=7MX8eSnzEl0DWIFS



*Pixabay로부터 입수한 summerstock님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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