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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Nov 12. 2023

해결책은 없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은 것뿐

결벽의 끝을 달리고 있다면


서장훈, 이수근이 보살로 나오는 "무엇이든 물어보살"을 보고 있자면 사람들 다 거기서 거기구나, 뭐 딱히 다른 것도 없고 내가 하는 고민을 저들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왠지 마음이 편안해질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의 고민에 도움을 주려고 이수근은 3살짜리 동자 분장을, 서장훈은 선녀 분장을 하고 앉아 있지만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수근은 통풍으로, 서장훈은 결벽증으로 마냥 평탄한 생활은 아니라는 걸 들은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마침 고민 의뢰하러 온 한 남자가 자신은 너무 결벽증이 있어 걱정이라며 어떻게 하면 좋으냐 서장훈에게 직접적으로 물었다. 결벽 끝판왕의 서장훈이 담당하기에 완전 맞춤형 의뢰인이다.


깨끗하고 깔끔한 건 물론 더러운 것보다야 백 배 낫겠지만, 극에 달할 정도로 깨끗함을 추구해서, 때문에 평생 함께 하기로 한 사람과 갈라설 정도면 정상 범주 안의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그의 전처도 깨끗하지 않음이 극에 달할 정도였다 하니 둘의 사이는 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치달았겠지만.

너무 성향이 극과 극이라 한 집에서 살 수 없었던 그들이기에 서장훈의 결벽증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의뢰한 고민남도 서장훈과 거의 비슷한 성향이었다.

너무 결벽증이 심해서 샤워 시간이 무려 두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인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다른 곳에 써야 할 시간이 줄어들어 난감하다고 했다. 깔끔 떠는 여자들도 오래 씻어봐야 한 시간이면 차고 넘칠 텐데, 몸에 비누칠 한 번 쓱하고 물만 대충 두어 번 끼얹고 나올 것처럼 보이는 상남자인 그가 두 시간, 때로는 그 이상도 걸린다고 하는 게 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안 됐다 쯧쯧 혀를 차고 있는데 보통 사람들의 안타까워하는 표정과 달리 서장훈은 고개를 끄덕끄덕 이해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에게 다음과 같은 방법을 일러 주었다.


숫자를 세어라.


몸을 씻을 때 꼼꼼하게 씻고 싶은 건 다 알겠는데 그러다간 욕실 밖으로 못 나올 수 있다면서 팔을 씻을 때 열 번, 머리 헹굴 때 이십 번, 다리 헹굴 때 열 번 이런 식으로 숫자를 세면서 하면 시간도 단축되고 목욕의 끝을 볼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곰곰이 듣고 있던 고민남은 깊은 깨달음을 얻은 듯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며 감탄도 모자라 존경의 표정까지 지어 보였다.


난 그 둘이 나눈 대화를 듣고는 저게 저럴 일인가,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거였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같은 결벽증을 가진 사람들끼리 해결책을 주고받는 모습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또 최근 반가운 소식.

일전에 '뚜렛 증후군" 때문에 힘들다고 고민을 털어놨던 남자의 소식을 얼핏 들었는데, 그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기사였다. 조용한 공간에서 고함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는 증상 때문에 죽고 싶다고 했던 사람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니, 나와 상관없는 사람인데도 희망적인 소식이라 참 기뻤다.


인생을 살다 보면 왜 이리 나만 힘들까 하는 생각이 곧잘 들 때가 있다. 하지만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면 결국 해결의 길로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수영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가 줄을 잡긴 했지만 빠져 죽을 것 같아 엉엉 울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물에 떠내려 가지 않으려고 오로지 팔 힘으로만 줄에 매달려서는 거의 누운 채로 안간힘을 쓰는데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부들부들 떨며 우는 모습이었다.

한데 그 아이 뒤, 주변 사람들은 태연하게 그곳을 걸어 다니는 모습도 같이 보였다. 물이 깊은 곳이 아니라 성인에게는 허벅지 높이, 어린이에게는 고작 배 정도 높이의 물이었던 것이다.  

바로 뒤에 있던 꼬마의 엄마는 거의 누워 떠 있던 아이의 다리를 잡아 발이 땅에 닿도록 일으켜 세워 주었고, 아이는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며 안간힘을 내어 줄을 잡고 있었는데 똑바로 서서 일어나 보니 겨우 엉덩이까지 오는 물속의 자신을 보면서.


그러니 해결책이 없다고 울고 불고 할 일이 아니라 다른 방법이 있는지 잘 찾아보아야 할 일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경우는 요양원 비용이 무료라는 것을 모르고, 요양원 비용을 낼 돈이 없어 할머니가 누워 있는 병실 침대채로 밀고 끌며 숨을 헐떡이며 뛰쳐나오는 지안이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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