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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Nov 16. 2023

저는 피를 주려고 태어났대요

공혈견 이야기


목줄을 하고 싶어요.

조금은 거추장스러운 목줄을 하고서

주인이 날 이끄는 대로

걸어도 보고 뛰어도 보고 싶어요.

그걸 산책이라고 한다죠?

네... 전 한 번도 목줄을 해 본 적이 없거든요.


저는  

조그만 우리 안에 있어요.

잠 잘 때도, 밥 먹을 때도, 친구와 놀 때도, 응가를 할 때도

어디 나가지 않아요.

그저 우리 안에 늘 있어요.


저는 피를 주려고 태어났거든요.


친구들, 사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구들이지만

그 친구들이 아파서 수술할 때 피가 모자랄 경우를 대비해

저는 늘 이 자리에서 피를 내주는 역할을 한답니다.

네... 제 삶의 이유는 피를 주는 거예요.


저도 주인에게 반려견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한 가정의 가족처럼 지내고 싶지만

저는 태어나길 이렇게 태어나서 어쩔 수 없다네요.

그래도

내 피가 친구들의 생명을 살린다 하니 다행이지요.

사실은 내가 그것 말고는

달리 뭘 할 수 없다는 걸 알거든요.


오늘 한 거라곤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친구들과 몇 마디 대화만 나누었을 뿐인데

벌써 하늘은 붉게 물이 들어 버렸어요.

저걸 노을이라고 한대요.

아... 나도 저 노을 끝이 어딘지 그 끝을 향해 마구 뛰어보고 싶어요.

하지만 그럴 수 없어요.

난 우리 안에서만 지내니까요.

이제 곧 잠들 시간이래요.

잠을 자고 눈을 뜨면 오늘과 똑같은 내일이 또 시작되겠죠.


밖에 나가 힘껏 뛰노는 걸

딱 한 번만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이 세상 떠나기 전

딱 한 번만이라도...





공혈견, 공혈묘


반려동물도 사람처럼 수술이나 치료 중 심각한 출혈이 발생하면 수혈을 실시하는데, 이때 피를 공급하는 개와 고양이를 각각 공혈견, 공혈묘라 한다.

한국동물혈액은행은 2002년부터 공혈동물을 사육하며 혈액을 공급해 왔다. 하지만 2015년 동물보호단체, 동물혈액은행에서 운영하는 사육장을 방문한 결과 300마리에 해당하는 공혈견들이 뜬장에 갇힌 채 잔반을 먹이는 등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된 것이 포착돼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후, 환경개선을 위해 뜬장을 없애고 신축 사육장을 짓는 등 변화를 가졌지만,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는 사육장에서 어떤 환경에서 공혈동물들의 피를 공급하는지 상태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세계동물혈액은행 지침에 따르면 공혈 기준은 몸무게 1㎏당 16mL 이하고, 6주가 지나야 다음 채혈이 가능하지만, 기간을 지키지 않고 한 달에 한 번씩 채혈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각 가정의 반려견이 헌혈에 도움을 준다면 공혈견에게 자유를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 링크

[펫코노미] 평생 피 뽑히는 '공혈견'에 대해 아시나요?

'공혈견'에 대한 9가지 이야기

이미지 출처. 동물보호단체 케어 공식 홈페이지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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