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연기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해낸 박은빈을 보며 시종일관 감탄하며 드라마를 본 기억이 난다. 끊임없이 관찰하고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오도록 무한한 연습을 했던 그녀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2023년 4월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거머쥐는 모습을 보고는
"그래, 바로 저거지!"
하며 마치 친한 지인이 큰 상을 받은 것처럼 나도 같이 기뻤다.
대상을 받은 여배우의 품위가 있니 없니 하는 한 평론가의 극히 주관적인 말이 나돌기는 했지만, 박은빈 그녀가 폭죽 소리에 그토록 놀라고, 수십 번의 인사를 하고 또 하고, 멈추지 않는 눈물, 콧물 때문에 소감인지 오열인지 모를 장면이 연출된 것 또한 자신보다 더 훌륭한 선배 배우님들이 받아야 마땅한 상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살아온 겸손한 마음이 불러일으킨 당혹감에서 빚어진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정점을 찍어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연예인을 보면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든다.
사람들의 열광과 환호에 기쁨도 잠시, 이제 곧 내리막길로 치닫겠지 하는 마음이 들 테니 얼마나 불안할 것인가. 차라리 전교 2등이라면 열심히 해서 꼭 1등을 해야지 하는 마음에 다른 생각일랑 할 틈도 없을 텐데, 그에 반해 전교 1등은 이제 곧 자신의 자리가 뺏길지 몰라 전정긍긍하는 것처럼.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의 삶을 누리는 기쁨도 물론 크겠지만, 이제 곧 자신의 인기도 사그라들고 말겠지 하는 두려운 마음도 클 것이다. 정점을 찍은 연예인들 중 몇몇은 그 불안함과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손대지 말아야 할 것에 요즘 부쩍 손을 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박은빈 또한 전 국민의 지지와 사랑을 받아온 터라 우영우의 영광을 또 안을 수 있을까 적잖이 염려되었는데 이번에도 또 해낸 것 같은 느낌이다.
"무인도의 디바"
한낱 배구공에 윌슨이란 이름을 붙인 것도 모자라, 바다 저 멀리 가버린 윌슨과 주인공이 이별할 때는 감정이입이 너무 돼버린 나머지 펑펑 울고 말았던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드라마다. 한데 이 영화 주인공인 톰 행크스도 무인도 생활이 4~5년이었는데, 조그맣고 여린 16살 여자 아이가 혼자서 15년을 살아냈다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이 좀 과하긴 했지만, 그 과함까지 물리친 박은빈.
15년, 그간의 세월이 허무하지 않도록 살고 싶다며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는데 무대 뒤에서 최애 스타의 목소리 대타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 나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말았다. "넘어지지 않을 거예요."라는 가사 때문인지, 앞서 나온 서사가 너무 기가 막혀서인지 박은빈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어이없게도 울고 만 것이다. 무인도에서 15년을 버틴 게 내가 아니고, 정상의 자리까지 올랐다가 보잘것없는 가수가 되어버린 가수 역의 김효진의 마음을 내가 아는 것도 아닌데 눈물이 왜 났는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코까지 훌쩍이는 나를 보았다.
보통 극 중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무명가수의 목소리로 대역을 쓰는 경우가 많던데,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자신이 직접 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박은빈이 과연 다른 사람의 목소리 위에 입만 뻥긋한 연기를 했을까? 호기심이 일었다.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도 바이올린을 배워 극 중에서 직접 연주했던 전적이 있던 터라, 이번 노래도 그녀가 직접 부른 건 아닐까?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한데 그러기엔 노래가 흠잡을 곳 없이 너무 훌륭해 고개가 갸우뚱한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부른 것에 박은빈이 립싱크를 했을까 하고 넘어가기엔 호흡, 표정까지 너무 완벽하다.
궁금하면 참지 않지. 박은빈이 직접 부른 건지 아닌지 검색하여 확인해 보았다.
와우!
역시 박은빈!
가수지망생인 역할을 하는데 노래 부르는 장면을 대타로 쓸 수 없었다고, 시청자들이 공감을 느끼려면 자신이 직접 불러야 감정 전달이 더욱 잘 되지 않을까 하여, 실제 가수지망생만큼 약 1년간 노력했다고 한 인터뷰를 발견했다.
역시는 역시!
그녀의 뒤에 대상의 아우라가 또 한 번 비추는 듯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허투루 하지 않고 열심히 최선을 다 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는 박은빈을 보니 지켜보는 내가 다 뿌듯해져 온다.
앞으로도 그녀가 자신이 맡은 역할에 혼신의 힘을 다해 보여주어, 노력한 만큼 롱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참으로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