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사람을 모아 놓은 직업이 무어냐 묻는다면 개그맨이라 답하고 싶다.물론 의사, 변호사 등 주로 '사'자로 끝나는 직업군에 단연 스마트한 두뇌를 가진 이가 많겠지만 '임기응변'을 놓고 보자면 개그맨이 독보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한 내가 개그맨의 면접 현장을 알 도리는없지만,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들만 모여라 한 다음 그중에서도 월등한 자를 뽑아 개그맨 자격을 주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니 말이다.
예전엔 스튜디오 내에서 녹화를 하고 가짜 웃음을 집어넣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면, 요즘은 스탠딩 무대에서 방청객과 함께 호흡을 맞춰가는 게 대세인 듯하다. 현장감과 박진감에 더욱 생생함이 느껴지지만 무대 위 광대를 자처한 개그맨이 느끼는 압박은 상당할 것이다. 객석에서 언제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몰라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대사를 쳤을 때 폭소가 나온다면 더없는 희열을 느낄 테지만, 반대로 반응이 전혀 없는 관객의 리액션을 마주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아마 피가 마르는 일일 테지. 만일 내가 무대 위에 서있는 그들의 입장이라 한다면 수명이 반으로 줄어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고백하자면 나도 개그 욕심이 좀 있는 편이다. (내향적이라며?) 먹을 것과 생필품만 내게 주어진다면 1년 열두 달을 집 밖에 안 나가도 살 수 있을 정도로 내향형 인간이지만 남들을 웃기고 싶은 욕심은 성향과는 별개인 듯하다.
학창 시절에대화 도중 내 말을 귀담아듣던 친구가 푸하하 웃음이 터져 버리면 그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터진 웃음은 쉬이 진정되지 않아서 툭툭 약한 잽만 날려도 불꽃처럼 계속 활활 타올랐다.(그렇게 웃기고 웃기고 또 웃기다가 나는 글에서까지 웃음에 욕심을 내고 있다는...)
이런 역사(?) 때문에 나는 개그맨도 아니면서 개그맨들의 심정이 너무 이해가 간다. 한편으론 내심 궁금증도 일었다. 본인이 야심 차게 준비하고 포복절도할 거라 잔뜩 기대했던 대사를 호기롭게 읊었는데 매정하게도 관객석에서 쌩~하고 냉랭한 바람이 불어버리면 창피해도 너무 창피하지 않을까? 명색이 웃겨야 사는 개그맨인데 안 웃기면 자괴감이 엄청날 텐데, 남을 웃기는 게 직업이니 막말로 돈벌이도 못하면서 내가 밥 먹을 자격은 있나 하는 생각도 들겠지 하며 웃음 뒤에 가려 늘 조마조마함을 안고 살 그들이 안쓰럽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궁금증을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라 불리는 장도연이 해결해 주었다.
장도연은 호감형 개그맨으로 불리는 개그맨 중 한 사람이다. 최근에 시상식에서 소감을 말하는 영상이 매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듣고 있던 중 수상소감 치고는 좀 장황하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왜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지에 대한 설명까지 곁들인다. 조금 늦게 도착한다는 블랙핑크 대신 자신이 3분간 시간을 메워야 한다며 갖가지 이야기를 끌어왔는데 그것이야말로 스탠딩 코미디를 방불케 했다. 관객석에 앉아 있던 연예인들이 장도연의 재치 있는 입담에 너무 웃다가 눈물까지 흘렸다는 후문이 영상을 지켜보자 이해가 갔다. 천상 개그맨이다. 안 그래도 호감형의 장도연이 더욱 호감형이 되었다.
대본 없이 장장 3분 동안 수상 소감을 소재로 스탠딩 개그를 하고 있는 장도연. 분명 수상이 맞는데 왠지 개그 프로 같은^^
장도연이 꽃게춤으로 몸개그를 선보이고, 다소 보기 민망한 골반 튕기기 춤(일명 Y춤)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을 때보다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이야기꾼으로 변신하여 활약했을 때가 나는 훨씬 마음에 들었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내는 말재간 하며 상대를 향한 배려심, 게스트의 뜻밖의 대답에 따른 임기응변의 처세까지 두루 갖춘 그녀를 보고 있으면 어떤 상황도 그녀 나름의 해결 방안이 있을 것 것 같아 마음이 편해서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유튜브에서 살롱을 운영하며 토크쇼를 진행한다 했을 때 참 잘 됐다 싶었다. 4년 전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프로그램을 같이 했다는 이유와 친분으로 초반에 공유, 이동욱이 게스트로 나오며 응원을 해 준 것이 발판이 되어 유튜브는 조회수가 평균 100만을 상회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감이 있었다. 게스트의 이야기도 즐거웠지만 장도연이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분량이 매우 적어서였다. 당연하게도 장도연은 호스트였으니 호스트의 주역할인 질문을 주로 했어야 했기에.
한데 과거 베이시스 멤버 정재형의 유튜브 '요정재형'에 장도연이 초대를 받아 게스트로 나온다 하니 얼마나 반가워하고 설레어하며 영상을 클릭했는지!
그녀의 이야기를 골자로 들은 적이 거의 없어서였는지 금세 영상에 몰입되었다. 언뜻 비치는 핸드폰 화면 속에 나는 연신 웃고 있었다. 나이는 많지 않지만(1985년생) 주변에서 조언해 준 대로 일기 쓰기, 신문 보기 등을 실천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좋았고, 그 때문인지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지 않고도 웃음을 주어 다른 이들과 차별화된 그녀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는 생각에서였나 보다.
아까 궁금했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자신의 유머가 통하지 않았을 때 즉, 배꼽을 잡고 웃겠지 예상한 대목에서 썰렁한 분위기로 탄식이 나오려 할 때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래야지. 내가 계속 매몰되고, 막 어떡하지 어떡하지, 도망가고 싶다, 이러면 안 되니까.
으응. 꿈꾼 거야. 왜~?
그래서 나 빼고 다 창피해해. 깔깔깔.
근데 난 괜찮아.
그래야 뒤에 걸 하지.
편하게 다 얘기하고 아니면 편집하겠지라고 생각하세요.
끝까지 마음의 위로가 안 된다면
'날 부른 너네 책임이지.'
라고 생각하세요
아. 진짜로.
뭐든 간에.
왜냐면 마음이 편해야 하는 사람도 좋고 듣는 사람도 좋잖아요.
이 말은 늘 걱정을 달고 사는(나 같은) 사람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었으며 따스함을 선사해 주었다. 저 마음을 갖기까지 마음고생을 숱하게 했을 텐데 결국 굴하지 않고 이기는 결론을 내려 정신승리를 하는 모습이 그녀를 현재의 자리까지 올 수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장도연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스스로 말한 것처럼 절대 정치 따위는 하지 말고 광대로서 우리에게 오래오래 기쁨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한데 기분은 의지를 좌지우지한다.
의지가 사그라들지 않기 위해 적당히 남 탓(?)도 해가며, (남 탓을 할 때는 소리 내 드러내지 않기 스킬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내 마음속으로만 말하는 등) 나의 길을 나아가기 위해 애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브런치에 들어와 발행해 놓은 많은 글 중 제일 처음 써 놓은 글을 어쩌다 읽게 되고 정돈되지 않은 글에 부끄러워질 때면 "이건 꿈이야, 응~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해 보는 거다. 또,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무슨 글이 이렇게 거지 같냐고 욕할까 봐 걱정된다면, "아, 몰라. 날 뽑은 운영자들 책임이지." 하는 생각으로 정신승리를 하자는 거다. 그렇게 정신을 무장해야 흔들리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글을 써나갈 수 있는 거 아닐까요? ㅎㅎ 좀 전과 마찬가지로 이런 말은 꺼내지 말고 마음속으로 혼잣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빵빵 터지는 훌륭한 글을 매번 써낼 수는 없으니까요. 결국 꾸준함으로 귀결되는군요.
지금은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로 불리는 그녀이지만, 언젠가는 외국에서 오프라 윈프리의 이름 자리에 그녀의 이름 석자가 들어갈 날도 올 거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