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때였나.
나는 홍역을 심하게 앓았다.
요새는 매 시기마다 정해진 예방주사를 잘 맞아서인지, 성장도 좋고 환경도 좋아져서인지 주변에 홍역을 앓았다는 이야기는 거의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1980년대에는 어디 홍역뿐인가. 장티푸스도 걸리고, 볼거리도 걸리고, 아무튼 요새 예방주사 수첩에 나오는 다양한 병들을 아이들이 두루두루 돌아가면서 걸렸다. 지금이야 먹을 것이 지천에 널렸으니 아픈 아이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골라 먹이면 된다만, 그 당시는 먹을 것 자체가 귀했으니 고를 종류도 몇 되지 않았다. 물론 피라미드 중간부터 꼭대기까지는 해당사항이 없겠지만, 바닥을 탄탄히 채우고 있던 서민이라면 평소에도 고기 구경은 잔칫날에나 했으니 아픈 아이라 해서 특별대우는 있을 수 없었다.
당시 내가 참 많이 아팠었나 보다. 홍역이란 놈이랑 싸워 이기느라 입맛도 포기하고 결국 식음을 전폐했다고 하니. 한두 끼는 아파서 그렇다 쳐도 하루 내내 먹지 않으면, 그것도 평소엔 뽈뽈대고 잘만 돌아다니던 아이가 몸져눕고, 먹을 것 앞에서 고개를 돌리면 부모 마음은 억장이 무너질 터.
아무것도 먹을 생각을 안 하니 이건 혹시 먹으려나 해서 쿨피스를 사다 주셨는데 그건 먹더란다. 그래서 다른 음식은 전혀 없이 홍역을 앓던 일주일 내내 나는 쿨피스 하나로 버텼다고 들었다. 다행인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라 난 아팠던 기억이 전혀 없다. 초등학교 때의 기억도 특별한 이벤트만 생각나는데 취학도 전인 어린아이의 기억엔 특별한 뭔가가 남는 게 없다. 그저 심하게 아팠었다는 것 밖에. 그러니 쿨피스로 일주일을 버텼다는 엄마의 이야기만을 오로지 믿을 수밖에.
홍역 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는 몰라도 나는 잔기침을 좀 하는 편이다. 다른 건 몰라도 목소리는 꽤 들어줄 만해서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성대모사도 곧잘 하고, 한때는 라디오 DJ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잔기침 때문에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 어떤 성우도, DJ도 목소리를 멋들어지게 내다가 잔기침을 하는 걸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조용한 곳에서 모두 침묵을 지킬 땐 좀 힘이 든다. 목이 간질간질해지면 헛기침 같은 잔기침을 한 번 하고 싶은데 너무 조용하니 주목을 받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내향형 인간은 주목만으로도 얼굴이 빨개진다. 조금 시끄러워도 되는 장소라면 개의치 않고 "큼" 소리를 내는데 입장을 바꿔 내 옆 사람이라면 그 소리도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세 번이면 질린다는데 주기적으로 들리는 헛기침 소리가 무에 그리 듣기 좋을까.
엄마는 내가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잔기침을 하는 걸 유심히 보셨나 보다. 그리곤 또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를 하셨다.
그때 내가 널 데리고 병원에 다녔다면 금방 나았을 텐데, 병원도 못 가고 아픈 애를 집에서 내내 쿨피스만 먹였으니... 에이그.. 엄마 잘못이 크다.
생전 가야 당신 잘못은 잘 인정하려 들지 않으시는 분이 둘째 딸이 일주일 내내 쿨피스만 먹은 일만 떠올리시면 무너져 내리신다. 깊은 한숨과 함께 매번 하시는 레퍼토리지만 이제 그 이야기는 나의 마음에 어떤 파동도 주지 않는다. 또 매번 같은 소리시네, 난 괜찮대두.
자식은 무덤덤하게 괜찮다고 이야기를 해도 무던해질 리 없는 부모 속. 엄마는 또 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깊은 한숨을 어쩌지 못하고 자그맣게 토해내신다.
엄마.
나 이거 잔기침은 그냥 습관이야. 성격이 지랄맞고 예민해서 목구멍이 살짝 간지러운 걸 못 참고 큼 하는 거니까 걱정은 붙들어 매셔.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