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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Jan 02. 2024

하품하면서도 연필을 놓지 않는 딸을 보며

금, 토, 일, 월 4일간의 연휴 동안 뭐 하고 이제야 수학 숙제를 기억해 냈는지 부랴부랴 중등 수학 문제집을 꺼내 하나하나 문제를 푸는 딸이다. 빠른 아이들은 이미 중 1 선행을 한 바퀴 돌았겠지만, 너무 빠른 선행은 아이를 질리게 할 수 있다는 의견에 동조하는 나는 겨울방학이 임박할 무렵에 시작하는 센터의 중등 수학 공부 시작을 그대로 따랐다.


수학 과목인데 왜 영어가 나오느냐며 눈이 휘둥그레지던 딸(예를 들면, 최대공약수는 G, 최소공배수는 L이라 할 때, LxG=AxB로 표현하는 등)은 중학교 공부가 낯설어 두려움을 느꼈다. 새로 접하는 개념에 다소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열 페이지가 넘는 숙제에 허덕거리다가 찬찬히 한 문제씩 풀어나가는 모습이었다. (하루에 세 페이지씩만 했어도 진작에 끝났을 것을...)


딸아이를 등지고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나는 딸아이 공부가 잘 되어가나 싶어 슬쩍 쳐다보았는데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딸아이의 눈은 흡사 동태 눈알을 연상케 했다. 사람의 눈알이 물고기의 눈알 모양으로 변해 가는 것은 평소에 잘 볼 수 없는 것이라 신기해서 물끄러미 계속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입이 찢어져라 하품까지 한다.


곧이어 입을 여는 딸.


졸려...


좀 자고 일어나서 할래?

 

졸면서 백날 쳐다봐야 진전이 없을 걸 경험상 알기 때문에.


그럴까...


이미 잠에 포박당한 듯 낮고 느린 목소리에 반쯤 감긴 눈으로 몽유병 걸린 사람처럼 딸아이가 스르륵 일어나는데 방금 타다 주었던 율무차가 눈에 들어왔다. 견과류가 들어간 차이니 두뇌 회전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타다 준 것인데 먹었으면 이를 닦아야 하니,


양치하고 자~ 근데 양치하면 화한 기운에 잠이 올까? 어쨌든 양치해.


칫솔에 치약을 묻혀 공부하던 책상으로 다시 돌아와 앉았다. 잠시 치카치카 양치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조용히 흐르는 적막. 설마 이 닦다 말고 자는 건가? 하고 쳐다봤더니 칫솔을 입에 문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다. 쓱싹쓱싹 집중해서 풀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선 미소를 띄며 내게 말했다.


양치하고 있으니까 안 졸려. 헤헷


정신이 번쩍 난 김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문제를 푸는 딸. 아고... 대견하기도 하지만 안쓰럽다...


이미지 출처. freepik



이제 내일이면 방학이다! 아니 졸업이네... 아... 어떡해... 싫어. 너무 싫어.


방학이면 단어 그 자체가 학업을 놓는다는 의미라 방학식만 학수고대 기다리던 아이들이었는데 이번 방학은 딸아이의 절규에 가까운 "싫어"소리가 좀 색다르게 느껴졌다. 이제 6년의 초딩 생활을 접고 중딩 생활을 맞이하게 될 아이의 걱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서였나 보다. 중학생이 되면 초등학생과 달리 본격적인 공부가 시작된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었던 모양이다. 학업의 무게가 작은 어깨를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을까.



조금만 힘내렴. 세상은 일등도 원하지만 성실을 더 원하거든. 지금의 너처럼 성실한 그 태도라면 무얼 하든 할 수 있게 될 거라는 걸 이 엄마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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