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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Dec 12. 2023

너무 똑똑한 아이를 낳았어

아이들 다니는 센터에서 소방서로 직접 가서 받는 소방 외부체험이 잡혀있어 급식도 못 먹고 조퇴를 해야 하는 날이다.

건강이 제일인데 점심까 걸러 가면서 배 고픈 상태로 하는 체험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오전에 가게 오픈과 거의 동시에 야채김밥 두 줄을 주문해서 가지고 있다가 차에서 먹일 요량으로 젓가락을 챙겨 담아 나갔다.



포장 겉면에 60분 김밥이 가장 신선하고 맛있는 시간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본 아들이 말한다.


엄마. 이거 언제 샀어?


까탈스러운 아들은 약속이나 규칙을 매우 좋아한다. 혹시 상했을까 싶어 물어보는 건가. (설마 엄마가 너희에게 상한 음식을 주겠니?)


무심히 대답하는 나.


50분 전에.


솔직하게 말하면 시간이 지났으니 안 먹겠다고 할 수도 있고, 너무 거짓이면 양심에 찔려 적당히 둘러댔다.

그랬더니


10분 만에 어떻게 먹어.

시간이 너무 촉박하잖아.


(그것도 실은 줄여 말한 거야. 사실 2시간 된 거야. 근데 한 시간쯤 지난 거 먹었다고 안 죽거든?)


예의상 물어본다.


배고팠어?


그랬더니 아들 대신 딸내미 하는 말.


배 많이 고팠대. 아까 나한테 그랬어.


으휴. 그러니까 아침에 빵 말고도 콘수프까지 다 먹었었어야지.


라고 했더니

딸이 여학교 기숙사 사감처럼 하는 말.

엄마. 먹었었어야지는 없어.

과거형이 하나 들어가지 따블로 들어가는 게 어딨어.


ㅡ.ㅡ


그래 늬 똑똑하다.

똑똑해서 차암 좋겠다.


아... 이눔들이랑 대화하기 피곤하다...


그러던 중 대화하다 대사 속에 왠지가 등장했다.

놓칠 수 없지.

이번엔 내가 까칠 모드로 전환하여 물었다.


왠지는 어떻게 쓰는 걸까?


막둥이에게 대답 우선권을 주었더니 당당하게 답한다.


에다가 ?


뭐? 그럼 완지인데?

오늘은 왠지가 아니고 완지냐?


딸이랑 나는 둘이서 큭큭거리며 웃었다.


두 번째는 정답을 맞히려 시도하는 아들.


아! 음.. 그럼 이응하고 아 이?


이응 면 애? 왠지가 아니라 앤지?

큭큭큭큭 앤지다 NG 큭큭


막둥이 놀려먹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이제 딸내미 기회다. 기다렸다는 듯 또박또박 말하는 딸.


그게 아니라 에다가 아 이 지!


맞아 왠지~

오~~~ 잘 아는데? 지금 말한 왠지 말고 다른 유사한 발음은 모두 으로 알고 있으면 돼~ (웬만해선, 웬일 등) 말이 나온 김에 뇌리에 콕 박히라고 결론지어 주었다.


마침 적당한 시간에 맞춰 도착하여 힛 하고 웃으며

잘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딸.

엄마 안녕~ 하며 아직도 마냥 아기 같은 막둥이.

자꾸 틀린 게 겸연쩍은지 머리를 긁적이며 내리는 모습이 귀엽다.


겨울을 맞은 내 입술이 역시나 터서 거추장스러워 뜯어버리려고 손을 가져다 대려 했더니 오동통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으며 "어허. 뜯지 마. 지켜본다!" 하고 엄마 입술을 사수하려고 근엄한 표정을 지을 때랑은 또 다른 모습이다.


가끔 까칠한 행동들을 쌍으로 해서 피곤하다가도 이래저래 사랑스러운 아이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또 웃으며 하루를 살아낸다.



이미지 출처.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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