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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Jan 23. 2024

신새벽에 응급실행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새벽 2시가 훌쩍 넘어서야 겨우 잠에 들었으니 아직 일어나긴 이른 것 같은데 누군가의 시원한 손이 내 얼굴을 만지는 느낌이 들어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남편이었다. 어느새 갈아입은 건지 당장 출근할 것 같은 옷차림이었다. 


나,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


응?


베란다로 보이는 밖은 역시나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다며 깜깜했다. 밤 시간이 분명한데 갑자기 병원이라니? 안경 없이는 바로 코 앞에 있는 얼굴도 분간 못하니 벽시계는 보기를 포기하고 떠지지 않는 눈으로 손을 더듬더듬 머리맡에 두었던 핸드폰을 찾아 집어 들었다. 


휴대폰 화면을 터치해 보니 4시 45분이었다.


응??

어디가 안 좋은데? 낮에 안 좋았던 목?


응. 잠을 못 자겠네.


잠깐만 있어 봐. 나 얼른 준비할게.


아냐. 자긴 자. 119 불러서 가려고.


응? 아니야. 내가 데려다줄게.


애들 학교 가야 하니까 더 자고 애들 준비시켜 줘. 119 불러서 가면 돼. 더 자.



생각해 보니 내가 같이 병원에 따라가면 집에 아이들만 남게 된다. 아침에 아이들 학교 갈 준비를 해 줄 사람이 없다. 하지만 아프다는 남편을 병원에 혼자 보내놓고 다시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았다. (친절한 예고가 있을 리 없지만) 예고도 없이 병이라는 진단이 나올까 봐 무섭기도 했다. 


빠르게 병원에만 데려다주고 오면 될 것 같기도 한데 구급차로 가면 바로 응급실 직행이라고 하니 구태여 내가 가서 하나하나 절차를 밟는 것보다 구급차를 타고 가는 게 더 빨리 진료를 받으려나 생각만 많아진 머릿속으로 이 생각, 저 생각하는 중에 남편은 벌써 1, 1, 9를 눌러 통화를 하고는 1층으로 내려가 기다리겠다며 일어났다.(아프다는 사람 본인이 직접 구급대를 부르고 내려가서 기다리고 서 있는 차분한 광경은 또 좀 생소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아이들 학교 보내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집을 나섰고 나는 걱정하다 졸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7시가 되었다. 

갑자기 삑삑삑삑 띠리릭 현관 도어록 여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누구지?


엇, 남편이다!!


어! 어떻게 된 거야? 결과는 뭐래? 왜 아픈 거래?


응. 별 거 아니래. 진통제 받아왔어.


진짜? 괜찮대?


응. CT 찍었는데 이상 없대. 


하고 이야기하며 씽긋 웃어 보이는 남편.


휴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지 않아도 어젯밤 회사에서 다른 부서 직원이 과로사로 죽었다면서 죽어도 회사에서 죽어야 몇 억 나올 텐데 이야기하길래 난 몇 억 필요 없으니까 죽는다는 소리 좀 하지 말라고, 나보다 먼저 죽으면 내가 죽여버린다고 이야기했었다. 죽는다는 쓸데없는 소리 했으니까 얼른 퉤퉤퉤 하라고 한지 몇 시간도 안 되어 신새벽에 일어나 119를 부르겠다는 남편 때문에 가슴이 얼마나 철렁 내려앉았는지 모른다.


조금 있으니 아이들이 차례로 일어나고 둘러앉아 아침을 먹는데 멀쩡히 아무 일도 없이 돌아온 남편이 감사해 남편을 향한 내 목소리는 상냥함 그 자체였다. 상냥함의 기준치를 상당히 넘은 나를 보며 막둥이가 하는 말.


엄마, 오늘 왜 이렇게 아빠한테 친절해?


응. 아까 새벽에 아빠가 병원에 갔다 왔는데 아빠가 아프다 그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아빠가 만약에 지금도 병원에 있고 환자복 입고서 입원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봐. 흑.


눈물이 찔끔 나오는 것도 같았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다행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응급실에서 아무 일 없으니 집에 가라고 한 게 얼마나 다행이야 하고 말하는 남편과 함께 정말 다행이라고 이야기했다. 다행이란 말만 몇 번을 반복했는지. 


아픈 이유는 거실 바닥에 앉아 소파에 아무렇게나 기대다가 나무로 된 프레임에 뒷목을 기댄 게 문제였던 것 같았다. 유독 피부가 야들야들 아기 피부 같은 사람이 그 딱딱한 나무에 자신의 체중이 실린 뒷목을 제법 오래 기댔으니 목이 버텨내지 못하고 밤이 되니 목은 통증으로 신호를 보낸 것이었겠지. 


아무튼 건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법이다. 건강이 제일이다. 아프지 않도록 평소에 노력도 하고  건강에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남편이 안 아파서 정말 다시 한번 또 다행이다.

안 아파줘서 또 고맙다. 휴우...


살아 돌아온 남편, 소중한 남편 지금 뭐 하나 봤더니 또, 또! 나무 프레임에 기대고 앉아있네?


여보! 구급차 또 타고 싶어서 그래?!




심규선 Soulmate

https://youtu.be/pj1AxFTNcBU?si=6wk98B7KRAPUyFF6


*겨울방학이 되기 보름 전쯤 작성한 글입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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