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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Oct 26. 2022

편함을 추구하다 불편함을 얻었네

카카오톡 사태를 겪으며




<<정전 공지>>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약 3시간 정전이 있을 예정이오니
우리 아파트 주민 여러분께서는 이 점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여름 아파트 1층에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음. 그렇군. 정전이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양초도 사 두었으니 뭐 문제는 없군. 더군다나 해와 함께 하는 3시간이니 양초도 필요 없네. 하지만 노트북으로 작업해야 하니 혹시 모르니까 도서관으로 그럼 잠시 피신을 가야겠군.



하는 마음을 먹었더랬다.


아침나절 아이들을 학교에 등교시키고 나는 노트북과 마우스, 필기도구와 마우스패드까지 꼼꼼히 챙겨 걸어서 3분도 채 걸리지 않는 집 바로 옆 시립도서관으로 서둘러 갔다. 늘상 집에서 일했던 느낌과는 달리 ID카드를 찍고 들어가니 모두가 조용히 공부를 하는 공간이라 그런지 기분이 참 남다르다. 나름의 하고자 하는 공부를 하려고 모인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어린 친구들 뿐만 아니라 머리 희끗한 어르신들, 집에서 밥하다 말고 잠시 뛰어온 것 같은 아주머니까지(아... 그러고 보니 나도 아주머니구나... 자꾸만 까먹는 나의 정체성)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리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음~ 우리나라의 미래는 아직 밝구나~' 하는 안도감까지 느껴졌다.



난 비록 공부를 하러 간 건 아니고 일을 하러 간 것이지만 그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레 하나가 되어 조용히 노트북을 꺼내고 마우스와 마우스 패드도 꺼내고 세팅을 하고 앉아 산뜻한 기분으로 업무를 시작하였다.



한 시간쯤 흘렀나. 몸이 슬슬 반응이 온다. 너무 한 자세로 오래 있었나. 뻐근해진 내 몸 중 가장 중요한 허리도 곧추세워보고 빨래 짜듯 몸을 좌우로 돌려본다. 그런데 헛~!!! 느낌이 이상하다. ㅠ.ㅠ 내가 가임기 여성임을 잊고는 하필 준비하지 못한 그것이 시작된 야시꾸리한 느낌이 든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찬찬히 연기를 하며 스을슬 화장실로 향했다. 하아... 역시 슬픈 예감, 아니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 나 혹시 A.I인가 할 정도의 평소 나의 정확한 주기가 나를 골탕 먹이려는 심산인지 무려 일주일이나 앞당겨지다니! ㅠ.ㅠ



괜찮아. 집은 고작 도보로 3분도 되지 않으니 다행이야 라고 생각하며 얼른 집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역시 빠른 걸음으로 2분 정도만에 도착.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는데



으악~!!!!!!!!!!!!!!!!!!!


점! 검! 중!



와... 나 바보인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정전이면 엘리베이터가 운행을 안 하는 게 당연하지!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나처럼 생각했던 사람들, 그러니까 정전은 정전이고 엘리베이터는 엘리베이터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혼잣말들을 한다. 아~ 그래 맞아. 오늘 정전이니 엘리베이터가 안 되지~~



두 번째 괜찮아라는 혼잣말을 하며 나를 달랜다. 우리 집은 겨우 8층이지. 우리 동 꼭대기는 20층까지인데 8층인 우리 집 너무 감사하지. 까짓 거 계단으로 올라간다. 가뿐하지. 이 정도야. 3층, 4층, 오르면서 그래. 일부러 운동도 하는데 정전 덕에 운동까지 하네? 하며 한 발 한 발 계단을 오른다. 5층 되니 숨이 살짝 가쁘네. 6층. 숨이 차오른다. 7층 허덕 허덕 입이 자동으로 열린다. 코만으로는 숨이 감당이 안되는지 입을 열어 헐떡거린다. 소싯적 20대 때는 18층 직장도 출근 시간 엘리베이터가 만원일 때면 단숨에 뛰어올라갔던 나를... 믿어도 너무 믿었다. 난 20대의 젊은 피가 아니라규... 그런 생각을 하며 겨우 도착한 8층~! 오! 나의 집 8층!



아직도 정돈되지 않은 숨을 헐떡이며 현관문을 열고, 신발 벗고 화장실 불을 켜!고! 들어가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휴우... 손을 씻는데 어라? 화장실 불이 꺼졌다. 허억~!!! 뭐지?? 불이 꺼졌다는 건 불을 켰다는 것인데 뭐지? 정전인데 불이 켜졌다고??? 예비 전력이 살짝 남아 있었던 건가? 온종일 정전이란 단어를 머릿속에 넣고 다니면서 아무 생각 없이 스위치에 손이 간 나, 그리고 켜진 불 ㅎㅎㅎ 익숙함으로 다져진 내 모습에 잠시 헛웃음이 났다.



뭐 어찌 되었든 가쁜 숨을 다시 한번 휴우 내쉬고는 정수기 쪽으로 향한다.


아이고! 정전이면 이것도 못 마시네? 다행히 냉장고에 끓여서 넣어 놓은 물을 꺼내 목을 축였다. 엊저녁 보리차가 구수한 게 정수기 물보다 맛있지 않냐며 물을 끓여 냉장고에 넣어 둔 남편이 새삼 더욱 고맙다. 이렇게 감사할 때가...



잠시 또 나의 주특기인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정전도 이리 힘든데 물까지 동시에 단수였다면??? 으...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생각지도 않았던 운동을 해서 그런가 살짝 배가 고파서 핫도그를 하나 먹고 갈까 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도로 닫았다. 전자레인지도 역시 전기를 이용하는 도구였다. 어쩔 수 없이 허기를 참기로 한다. 예전에는 정전이라고 하면 냉장고 안의 반찬들이나 냉동고 안 식재료들을 엄청 걱정했었는데 내 몸이 힘드니 냉장고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가야 한다. 도서관에 두고 온 노트북과 내 소지품을 가지러. 아... 이럴 거면 집으로 올 때 다 챙겨서 올 걸. 아무튼 머리가 나쁘면 손 발이 고생한다더니 오늘 운동을 아주 제대로 하는 날이다.



내려갈 땐 뭐 급하지는 않으므로 세월아 네월아 신선처럼 걸어 내려갔다. 전기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고작 3시간의 정전 무시했던 나. 호되게 전기에게 당하면서...



운동은 무슨... 다시 태어나려무나... 묵호항에서 너무나 공감이 가서 찍은 사진^^




10월 15일 오후 3시경부터 거의 하루 종일 카카오톡 서비스 오류로 많은 사람들 아니 대한민국 사람 거의 전부가 불편을 겪은 하루였다. 톡을 보냈는데 뭔가 원활하지 않길래 잠시 오류가 있나 보다 했다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한 느낌은 커져만 갔다. 톡이야 문자 메시지로 대신하면 괜찮겠지 했는데 문제는 톡뿐만이 아니었다. 평소 다른 사이트에 회원 가입할 때 귀찮다고 통합 로그인을 하면서 대부분의 사이트 로그인에 <카카오톡으로 로그인>을 선택한 게 화근이었다. 거의 10년 동안 카카오톡과 함께 지내면서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굳건히 더 믿었는데 이런 사태가 벌어질 줄은 생각도 못 한 것이다.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상하다 느끼다가 집으로 도착하여 뒤늦게 뉴스들을 보고 '아... 화재가 났던 거였구나.' 하고 이해는 되었지만... 납득은 안 되었다. 주식을 이야기할 때 주식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달걀은 한 바구니에 넣지 말라는 건 이미 다 아는 기본적인 것인데 믿었던 카카오톡이, 거의 온 국민의 조용한 대화를 책임진다는 통신망의 대표주자가 그 중요한 시설을 분산시키지 않고 한 데 다 모아 통합 관리를 했다는 것이 말이다. 하다못해 개인 컴퓨터도 문제가 생기면 백업시스템이란 것이 있어 복구를 하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카카오톡이 사고가 있을 것을 대비하여 차선의 방책이라고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 매우 놀랍고도 아쉽게만 느껴졌다.




이번 사태로 인해서 카톡이 문제가 될 경우 카톡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메시지 프로그램들을 새롭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카카오톡으로 항상 2등의 자리를 지켜야 했던 네이버 "Line"은 이때다 하고 틈새홍보를 하였으며 N번방의 범죄가 생각나서 좀 사용하기 꺼려지지만 "텔레그램"도 있고 하루하루 이자만 푹푹 퍼주는 줄 알았던 Toss에서도 채팅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더니 ㅎㅎ



카카오가 계속 1등 자리를 지켰다면 다른 프로그램들은 이용해 볼 시도도 하지 않았을 텐데 다른 기업들을 위해 카카오가 배려를 한 것일까? 상생하기 위해? ㅎㅎㅎ



아마도 이번 사태로 인하여 카카오는 돈 주고도 못 배울 커다란 것을 배운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피해가 막심할 테니 돈을 지불한 것과 같은 결과가 되었지만.)


누구보다 앞서 나가서 선두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당장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을 항상 닦는 것이 중요하다.



무수한 질책을 받고 있을 카카오톡에게 한마디 해보자면



왕관을 쓴 자여. 무게를 견뎌라.



새벽 즈음 동트기 직전의 동해바다 캬아~~~





**10일 전 카카오 사태가 났을 때 써 놓았던 글인데

더 늦어지면 서랍에서 나오기 힘들 것 같아 꺼내 봅니다.

카카오도 늦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뭐가 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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