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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May 21. 2024

빨간 게 없어져뿟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지만

핸드폰이 먹통이 되었다

너도 나도 스마트폰으로 갈아탄 지 한참이 되었는데

우리 엄마의 스마트폰 세계는 오늘에야 열렸다


고대 유물 같은 구닥다리 폰은 이제 그만 보내주고

마술 같은 스마트폰으로 바꾸자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뭐가 그리 겁이 나시는지

핸드폰 내가 뭐 필요하노

망가질 때까지 쓸란다

한사코 거절하셨다만 이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스마트폰을 써야 그 좋아하는 신유 노래를 무한정 들을 수 있고

손주들 자라나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언제 어디서고 볼 수 있다고

암만 회유해도

뭐가 그리 무서우셨는지

버티고 버티길 몇 년째


결국 오랫동안 곁을 지켜온 핸드폰이 작별을 고하자

어쩔 수 없이 받아 든 스마트폰을

어찌 써야 하는지 안절부절

방법을 몰라 전화를 못 걸고 전화를 못 받으면 어쩌나 벌써 걱정이 한가득인 우리 엄마


친절한 언니의 설명을 한 시간 가까이 들었건만

어떨 때는 손가락으로 밀고

어떨 때는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또 어떨 때는 한 번이 아닌 두 번을 두드리라니

정신이 없으신가 보다

가끔 핸드폰이 지쳐 까만 잠에 빠지면

옆구리께에 돋은 버튼을 톡 눌러 깨워주기도 하란다



세상 간단해 보이는 핸드폰의 조작이

칠순 노모에게는 세상 어렵기만 하다



잘 봐봐

전화가 이렇게 걸려오면 초록색 수화기가 뜨는데

그걸 이렇게 누른 채 밀면 전화를 받을 수 있어

반대로 전화를 끊을 때는 빨간색 수화기를 누르면서 밀면 전화를 끊을 수 있고


응응

그건 언니가 알려줘서 알아


그럼 이번엔 내가 안 끊고 기다릴 테니까

엄마가 끊어봐 봐


어 그래

잠시 후 수화기 너머로 당황한 엄마의 목소리


야야

빨간 게 없어져뿟다!


귀에 대고 있던 핸드폰이 잠시 까만 잠에 빠졌나 보다

주인 허락도 없이 잠이 든 핸드폰을 보고  당황한 우리 엄마

하지만 곧이어 들리는 반가운 소리


어어

생기따 생기따

그러더니 다짜고짜 띠리링

그렇게 전화는 인사 없이 끊겼다


나 어릴 적 세상 살아가는 법을 항상 가르쳐 주던 우리 엄마

늘 크게만 보였던 우리 엄마에게서

중 1 우리 딸보다 초 5 우리 막둥이보다

더 어린 아기 같은 모습이 보인다




이미지 출처. pixabay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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