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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May 09. 2024

연상인 남편에게 "야"라고 부르지 말라며 소리쳤다

호칭 뭐 별 건가 싶지만



"여보~"


태어나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온몸이 오그라들어 공벌레로 변신할 뻔했다. 공벌레가 되려는 걸 겨우 참고 있는데 뒤이어 온몸은 어찌나 간질간질해 오던지 꽈배기보다 더 심하게 몸을 배배 꼬았더랬다.


궁합도 안 본다는 네 살 차이인 오빠를 만났을 때,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지금의 남편을 당시엔 오빠라 불렀다. 이름을 넣어 누구누구 씨라 부르는 것은 익숙지 않았고 결혼한 사이에도 마땅한 호칭이 없을 땐 남편을 오빠라 부르는 마당에 그보다 편한 호칭은 찾을 수 없기도 했다.


결혼 전 우린 양가 부모님의 허락 하에 6개월 간 동거를 했는데 집 마련 문제로 혼인신고도 결혼식을 올리기 전 미리 해버렸다. 혼인신고를 하고 돌아온 그날 저녁, 남편은 뜬금없이 날


"여보~~~"


라 불렀다.

그때 온몸에 돋아 오른 소름과 쉬이 가시지 않던 간지러움을 잊지 못한다.

이름을 곧잘 부르던 예비신랑이 마치 이제는 이렇게 부를 거야 하고 선전포고를 하듯 부르는 호칭이었다.


뭐가 저리 급해 호칭을 이리 서두를까 하다가 이내 곧 수긍했다. 부부싸움이란 사소한 것으로 시작해 나중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평소엔 사이가 좋다가도 기분이 안 좋을 땐 "야, 너" 하며 호칭부터 서로를 긁기 마련이다. 점잖은 호칭으로 부르다가도 싸우는 도중엔 급하강하다 못해 곤두박질친 호칭으로 기분이 더욱 상하고 마는데 평소에 호칭부터 "야, 너"라 불러왔다면 격앙된 상태엔 그보다 더 심한 욕지거리를 할 것이란 건 불 보듯 뻔하다.


그 누가 봐도 아줌마가 분명하고, 할머니가 틀림없지만


아줌마는 아줌마로 불리는 걸 싫어하고

할머니는 할머니로 불리는 걸 싫어한다.


할머니를 아주머니라 부른다거나

아주머니를 아가씨로 부르는 건 몰라도.


호칭이란 건 상당히 민감한 문제인 것이다.

아무리 외형보다는 내형의 아름다움이 우선이라고 떠들어대지만 같은 값이면 보기도 좋고 예쁜 것을 선호하는 게 사람의 본능이니까.


그러니 일차적으로 보이는 나의 겉모습을 속단하여 마구 호칭한다면 기분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을 수밖에.


이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남편은 본인도 오글거렸을 텐데 아내인 나에게 "너"라는 호칭은 쓰지 않고 "여보" 혹은, "자기"라는 호칭으로 일관한다.


결혼하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정말 심각할 정도로 부부싸움을 한 날.

남편도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나에게 "야!"라고 한 적이 있었다. 평소에 늘 여보, 자기라는 호칭으로 불리다가 "야"라는 호칭은 얼마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기분은 말할 것도 없이 무척 상했다. 나는 남편에게 누나도 아니면서 두 눈을 부릅뜨고 "뭐? 야?"라고 반복하여 따라 말한 후 "야"라고 부르지 말라고 소리쳤다.


오빠가 네 살이나 어린 사람에게 "야"라고 부르는 건 어찌 보면 무척 당연하고 합당한 일인데도 말이다.





오늘은 야근이 있어 남편이 아침에 퇴근하는 날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돌아오니 남편은 퇴근하여 씻고 있었다.

같이 아침을 먹었고, 잠자리에 바로 누우면 속이 더부룩할 것 같아 예전에 즐겨 봤던 드라마 "18 어게인"을 함께 보다가 남편은 2층 침대 위에서 잠이 들고 나는 아들 침대에 잠시 누웠는데 그만 깊이 잠들었나 보다.  

 


적막을 깨듯

"여보~"

하고 날 부르는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고 연이어 주문하는 잠에 덜 깬 목소리.

"된장찌개 끓여 줘~"


자다 깨서 정신이 없고 조금 귀찮기도 했지만, 이따 오후에 출근할 남편을 위해 미리 냉동고에서 냉장으로 옮겨 해동시켜 둔 불고기감도 꺼내고, 양파, 청양고추, 감자, 팽이버섯 등 찌개 재료들을 차곡차곡 꺼내 놓았다.


남편이 막 스물이 되었을 때 고작 열여섯(중3)이었던,

학창 시절로 따지자면 아주 까마득한 후배였을 한참 어린 나에게 "야, 너"하지 않고, 존중 한 스푼 담아 언제나 "여보"라 부르는 남편을 위해 내내 든든하라고 구수한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인다.




https://youtu.be/pNznXqBDzBg?si=mo4hyacBo3imVzqx



*이미지 출처. 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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