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온몸이 오그라들어 공벌레로 변신할 뻔했다. 공벌레가 되려는 걸 겨우 참고 있는데 뒤이어 온몸은 어찌나 간질간질해 오던지 꽈배기보다 더 심하게 몸을 배배 꼬았더랬다.
궁합도 안 본다는 네 살 차이인 오빠를 만났을 때,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지금의 남편을 당시엔 오빠라 불렀다. 이름을 넣어 누구누구 씨라 부르는 것은 익숙지 않았고 결혼한 사이에도 마땅한 호칭이 없을 땐 남편을 오빠라 부르는 마당에 그보다 편한 호칭은 찾을 수 없기도 했다.
결혼 전 우린 양가 부모님의 허락 하에 6개월 간 동거를 했는데 집 마련 문제로 혼인신고도 결혼식을 올리기 전 미리 해버렸다. 혼인신고를 하고 돌아온 그날 저녁, 남편은 뜬금없이 날
"여보~~~"
라 불렀다.
그때 온몸에 돋아 오른 소름과 쉬이 가시지 않던 간지러움을 잊지 못한다.
내 이름을 곧잘 부르던 예비신랑이 마치 이제는 이렇게 부를 거야 하고 선전포고를 하듯 부르는 호칭이었다.
뭐가 저리 급해 호칭을 이리 서두를까 하다가 이내 곧 수긍했다. 부부싸움이란 사소한 것으로 시작해 나중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평소엔 사이가 좋다가도 기분이 안 좋을 땐 "야, 너" 하며 호칭부터 서로를 긁기 마련이다. 점잖은 호칭으로 부르다가도 싸우는 도중엔 급하강하다 못해 곤두박질친 호칭으로 기분이 더욱 상하고 마는데 평소에 호칭부터 "야, 너"라 불러왔다면 격앙된 상태엔 그보다 더 심한 욕지거리를 할 것이란 건 불 보듯 뻔하다.
그 누가 봐도 아줌마가 분명하고, 할머니가 틀림없지만
아줌마는 아줌마로 불리는 걸 싫어하고
할머니는 할머니로 불리는 걸 싫어한다.
할머니를 아주머니라 부른다거나
아주머니를 아가씨로 부르는 건 몰라도.
호칭이란 건 상당히 민감한 문제인 것이다.
아무리 외형보다는 내형의 아름다움이 우선이라고 떠들어대지만 같은 값이면 보기도 좋고 예쁜 것을 선호하는 게 사람의 본능이니까.
그러니 일차적으로 보이는 나의 겉모습을 속단하여 마구 호칭한다면 기분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을 수밖에.
이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남편은 본인도 오글거렸을 텐데 아내인 나에게 "너"라는 호칭은 쓰지 않고 "여보" 혹은, "자기"라는 호칭으로 일관한다.
결혼하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정말 심각할 정도로 부부싸움을 한 날.
남편도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나에게 "야!"라고 한 적이 있었다. 평소에 늘 여보, 자기라는 호칭으로 불리다가 "야"라는 호칭은 얼마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기분은 말할 것도 없이 무척 상했다. 나는 남편에게 누나도 아니면서 두 눈을 부릅뜨고 "뭐? 야?"라고반복하여 따라 말한 후 "야"라고 부르지 말라고 소리쳤다.
오빠가 네 살이나 어린 사람에게 "야"라고 부르는 건 어찌 보면 무척 당연하고 합당한 일인데도 말이다.
오늘은 야근이 있어 남편이 아침에 퇴근하는 날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돌아오니 남편은 퇴근하여 씻고 있었다.
같이 아침을 먹었고, 잠자리에 바로 누우면 속이 더부룩할 것 같아 예전에 즐겨 봤던 드라마 "18 어게인"을 함께 보다가 남편은 2층 침대 위에서 잠이 들고 나는 아들 침대에 잠시 누웠는데 그만 깊이 잠들었나 보다.
적막을 깨듯
"여보~"
하고 날 부르는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고 연이어 주문하는 잠에 덜 깬 목소리.
"된장찌개 끓여 줘~"
자다 깨서 정신이 없고 조금 귀찮기도 했지만, 이따 오후에 출근할 남편을 위해 미리 냉동고에서 냉장으로 옮겨 해동시켜 둔 불고기감도 꺼내고, 양파, 청양고추, 감자, 팽이버섯 등 찌개 재료들을 차곡차곡 꺼내 놓았다.
남편이 막 스물이 되었을 때 고작 열여섯(중3)이었던,
학창 시절로 따지자면 아주 까마득한 후배였을 한참 어린 나에게 "야, 너"하지 않고, 존중 한 스푼 담아 언제나 "여보"라 부르는 남편을 위해 내내 든든하라고 구수한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