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이별하고 나면 하늘이 무너진 것 같고 세상이 끝난 것 같고 이제 살아야 할 이유가 없고 그러니 이 세상 하직하고 싶다며 울며 불며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랑 상관없던 이별노래는 이제 모두 몽땅 다 내 노래 같고 마음을 후벼 파 아려오니 죽을 것 같은 심정이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대니 우울감은 자꾸 심해지고 일상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주변에서 그놈은 나쁜 놈이었다고 육하원칙에 맞는 근거를 아무리 읊어 주고 험담을 해주어도 귓등으로 튕겨나가던 그 모든 말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고 지나면 어느새 일상으로 돌아와 멀쩡히 잘 살아내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우연히 듣게 되는 슬픈 노래가 그때 그 아픈 과거로 나를 끌고 가면 그래 그때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 회상하며 왜 그땐 그렇게 죽을 것처럼 암울한 시간을 보냈을까, 지금 이렇게 나는 멀쩡히 잘만 사는데 하고 슬며시 웃음까지 난다.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시간 낭비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유한한 시간이 참으로 아깝다.
그래서 안예은이 시간 낭비를 막으려 핑클의 루비를 들고 나왔다. 무적의 마징가 제트가 상큼 발랄 버전으로 전면 개조된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 곡의 원곡자인 핑클의 옥주현은 팔짱을 끼고선 이 아름답고 고전과도 같은 명곡을 아무리 안예은이지만 너도 감히 어쩔 수는 없을 걸 하듯 우쭐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다 그게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건 불과 첫 소절을 채 불렀을까 싶을 때다. 이내 그녀는 함께 박수를 치고 통쾌한 표정을 지으며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다.
안예은의 진정한 승이라고 할 수 있다.
원곡자의 마음을 허물어트렸으니.
실제로 바람이 난 남자친구와 이별을 겪었던 안예은 본인의 경험담이 녹아들어 갔다고 하니 진정성이 느껴지는 노래다. 이렇게 통쾌한 이별 노래는 에일리의 "보여줄게" 이후로 처음이 아닐까.
프로그램의 특성상 짧은 기간에 곡을 편곡해야 하고 라이브로 곡을 소화하다 보니 중간에 안예은의 박자가 약간 밀리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이 곡을 듣는 전 남친에게 빅엿을 먹이는 효과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또 곡을 완전 재해석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꽤나 오랜 시간을 흥이 나게 만들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노래가 너무 신나다 보니 노래 제목 <루비>가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니냐 할 수 있는데 루비라는 단어가 나오긴 나온다. 후렴구에 <루비루비루우~> 하고 분명히 신나서 흥얼거리고 있다.
또 재밌는 포인트는 곡 말미에 핑클의 시그니처 댄스인 '두 손 돌돌 말기 춤'이 나오는데 너무 자연스러워 깜빡 속을 뻔했다. 이 댄스는 <루비>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사랑>의 행복한 노래의 댄스라는 것을.
세상 다 끝난 것처럼 방구석에 처박혀 눈물을 찔찔 흘리고 콧물을 팽팽 풀 일이 아니라 이별을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라 생각하고 나는 더욱 행복할 거라 다짐하는 그녀의 마인드가 정말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