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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Nov 03. 2022

자유 낙하하는 파리를 보셨나요

저는 처음 봐서요


아... 아직 오전 11시밖에 안 되었는데 오늘의 하루 일과를 마감해도 될 만큼 많은 일이 있었다. 적어도 나에겐.


아침 등굣길에 갑자기 배가 아프다는 막둥이를, 누나가 평소보다 조금 일찍 나서야 하는 날이라 그냥 학교에 등교시켜버리고 말았다. 배가 아프다고 떼굴떼굴 굴렀다면 당연히 병원에 갔을 텐데 그냥 "스읍... 스읍..."만 하는 정도였고 혹시 몰라서 "오른쪽이 아파?" 하고 물었는데 "아니 가운데"라고 하길래 음... 맹장은 아니군. 하면서 걱정은 되었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면 낫겠지 하는 마음에 학교를 보냈는데...


보내고 집에 도착한 후 손을 씻고 외투를 벗으니 막둥이 담임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아이가 많이 아파해서 지금 보건실에 있는데 병원에 데려가 보는 게 어떨지 나에게 물어보셨다. 1교시가 무용시간인데 움직임이 석연찮아 왜 그러냐 물어봤더니 아프다고 하는 아이에게 엄살이 심하다는 엄마 이야기를 정보삼아 "응~ 아프지 않아~ 걱정 말고 하렴~" 하고 본인이 실수하셨다시면서. 본인은 아픈데 넌 안 아파라는 말을 들으니 서운했던 건지 울기까지 했다고. 욘석. 엄마 닮아 속상함을 많이 느끼기는...


무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진료를 받는데 결과는...

오른쪽이 아픈 게 아닌 걸 확인하시더니 수욱 배를 눌러보고는 별거 아닌 바로바로

똥배란다. ㅡ.ㅡ


그리고 돌아 나와 다시 차를 타는데 막둥이는 이제 좀 괜찮은 거 같다고 한다.

아직 처방해 준 시럽도 먹기 전이고 의사쌤이 배에 손 한번 갖다 댄 것뿐인데 괜찮다고? 그럼 진작 말하지. 엄마도 배에 손 갖다 대주는 건 정말 잘할 수 있는데...

어찌 됐든 다시 아이를 데리고 학교로 등교를 시켰다.


무슨 제대로 된 병명이나 나왔다면 보람이나 있지 웃음이 피식 나올법한 허무한 병명을 듣고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는 조금 억울했다. 물론 별 일 아니라니 너무 다행이긴 했지만... 여하튼 배도 고프고 집에 가자마자 바로 일을 할 요량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집에 가려고 쌀국수 집으로 들어갔다.


저렴하여 부담이 없지만 고급진 곳에 비교해도 그다지 맛 차이가 나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 쌀국수를 주문하고 앉았다. 금세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몇 젓가락 먹다가 단무지를 집으려 하던 찰나 어~! 공중에서 무언가가 자유낙하를 시작한다. 마치 날개가 없는 것처럼, 마치 중력에 몸을 맡긴 것처럼 슈우우웅.


그것은 파리였다.

초파리가 아니라 그냥 파리... 온몸에 힘을 빼고 슈욱 내려앉은 곳은 아니 휘딱 뒤집어진 곳은 단무지 종지였다. 주방이모들 설거지를 하나라도 줄여드리려 따로따로 담지 않고 단무지 종지에 절인 양파도 같이 몇 개 담았는데 이놈 파리가 양파 사이로 슝 떨어져서는 제대로 착지도 못하고 즈그 집 안방에 눕듯 홀라당 누워 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난 그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은 이제 곧 정신을 차렸는지 아님 자신을 바라보는 날 의식하는 건지 방황을 한다. 근데 방황을 하더라도 종지 바깥으로 해야 할 텐데 양파 속으로 더더 안쪽으로 파고든다. 그럼... 식초 냄새 때문에 더 어지러울 텐데... 아무튼 이제 이 종지에 담긴 양파와 단무지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보내주어야 한다. 이 놈이 온 데다가 다 발도장을 찍어놨으니 말이다.


종지를 살짝 들어 퇴식구 쪽으로 가져가는데 이동을 하는 것이 분명 몸으로 느껴질 텐데도 이놈은 그 안에서 체념인 건지 미로 같은 양파 안에서 밖을 못 찾는 건지 날아갈 법도 한데 감감무소식이다.


퇴식구 쪽에 종지를 놓으면서 "갑자기 얘가 떨어져서 안으로 들어갔어요" 하고 말하고 돌아서는 순간 주방에서 들리는 "옴마~! 깜짝이야~" ㅋㅋ

아마 초파리쯤으로 여겼다가 그것의 몇 십배는 되는 덩치가 큰 놈을 보고는 기겁을 하신 거겠지. ㅋㅋ




살다가 이런 일을 또 겪겠나 하는 마음에 우선 글을 쓰긴 썼는데 이것 참.

그래서 이 글의 주제는 뭐니? 하는 마음으로 복잡한 내 머릿속. 어제 수호 작가님의 글 내가 뭘 쓰려고 했었지? (brunch.co.kr) 를 읽었는데도 그게 참 잘 안 된다.


뭘로 해야 하나. 이 글의 주제는?

1. 파리도 가끔은 자유낙하를 꿈꾼다?

2. 파리 너는 시큼한 식초 맛을 좋아하니?

3. 사람이 먹기도 전에 발도장 찍는 건 너무나 재밌어?

4.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를 버금가는 파리의 실수를 보았는가?

5. 단무지, 양파 종지에 기어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6. 파리와 함께 하니 외롭지 않은 혼밥?


모르겠다.

그냥 오늘의 끄적끄적이라고 해두는 게 나을 것 같다. >.<



자유낙하. 정말 이런 식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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