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본인은 좋지 않은 경우에 쓰이는 단어인데 해충을 박멸한 것이니 나쁜 일을 한 것은 아니라서 장본인을 피해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초파리에게 매우 감정을 이입한 상태에서 쓰는 글이니 그냥 두기로 한다.
초파리가 겁도 없이 내 코앞을 알짱거리며 날아다닌다. 마술 할 때 잘 쓰이는 콧기름이 요놈들도 탐이 났나. 아무리 탐이 나도 그렇지 10월 중순에 초파리라니.
한여름 한철만 강한 인상을 주는 계절 스틸러가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흠뻑 느껴지는 10월에 어인 일인고.
어라, 근데 이것, 한 마리의 크기라고 하기엔 제법 크다. X파리의 아기인가. 아니, 내 시력에 문제가 생긴 것처럼 두 마리로 겹쳐 보인다. 눈을 한 번 질끈 감고 다시 초점을 맞춰보니 아...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였다. 한 마리는 다른 한 마리 등에 어부바를 하고 있다. 사실 곤충이 사람처럼 어부바할 일이 어디 있겠나. 춘향에게 홀딱 반해버린 이몽룡이 사랑하는 춘향에게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하고 말하는 것처럼 편의상 어부바라고 하겠다.
이 두 놈(제대로 말하면 연놈이 되겠다만... 엇, 근데 다른 단어는 항상 남자가 앞서 오는데 유독 이 용어는 여자가 먼저 오네. 나쁜 것만 여자를 앞세우고 내원참) 이 사랑놀음을 내 눈앞에서 신나게 하며 날아다니더니 갑자기 둘은 분리되어 그중 하나가 몇 장 안 남은 휴지심을 향해 앉았다.
원래 이것들을 처리할 때면 맨손보다는 화장지가 반드시 필요한데 제 발로 걸어 들어간 화장지이니 참 편리하고나.
몇 장 안 남은 두루마리 화장지의 한 장 안쪽으로 이불을 덮듯 들어가길래 기회는 이때다 하고 난 이불을 더 꾸욱 덮어주었다. 사요나라...
그렇게 그놈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보내고 나니 내가 좀 잔인하게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 업고 놀면서 사랑을 나누던 커플이었는데 그중 하나를 멀고 먼 저쪽 세상으로 보내버리고 말았으니...
근데 사마귀의 경우에는 짝짓기를 하고 나서 배고픈 암컷이 금방 사랑을 나누었던 수컷을 씹어먹기도 하는데 크게 내가 뭐 잘못한 건가 싶기도 하고. 음... 사마귀는 자의적인 것이고 초파리 이것들은 타의에 의한 것이니 다른가.
그래, 그렇지. 둘이 사랑에 빠졌는데 주변의 반대가 있으면 왠지 더 격렬한 사랑을 하게 되는 것처럼 그것들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나로 인해 어쩔 수 없는 헤어짐이었으니 더욱 애절하려나...
아차차... 그러고 보니 이불 덮고 조신하게 들어가 누워 제대로 신방을 차리려던 것을 내가 그만 명줄을 끊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