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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봄

그땐 그랬지

by 루시아



나는 여느 날과 같이 소를 데리고 풀을 먹이러 집 밖을 나섰다.

이제 겨우 11살이지만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난 운명이라 소먹이 주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한창 클 나이의 몸이라 뱃속에선 밥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인데 아버지는 나에게 귀한 소 굶겨 죽일 거냐며 얼른 소를 데리고 나가라며 성화다. 아버지에게 자식은, 나인지 소인지 답을 해보라고 물어보고 싶지만 아버지에게는 그런 질문을 하면 안 되는 거라 알고 있다.


보리가 쌀보다 많아 좀 서운하지만 그래도 갓 지은 밥이라 구수하고 따끈한 밥을 입에다 우걱우걱 밀어 넣고 열심히 씹어가며 고무신을 욱여 신는다. 그리고 소를 데리고 산을 오른다. 햇볕이 따사로운데 풀은 여적 이슬을 머금고 있으니 아직은 이른 시간인가 보다. 소한테는 맛나게 먹어라~ 이야기를 해주고 심심하니 긴 풀잎을 하나 뜯어 반으로 접고는 손으로 오밀조밀 만져가며 입에 가져다 댄다. 그리고 삐이~~ 삐이~~ 풀피리를 불어 본다.







그렇게 조금 놀았다 싶었는데 저 멀리 책보를 메고 학교를 가는 친구들이 내려다 보인다. 학교에 꿀을 발라 놨는지 매번 일찍 가는 아이들이다. 제일 일찍 가는 친구들이라 해도 나는 집에 가서 소를 우리에 넣고 책보를 챙겨 나와야 하기 때문에 조금씩 마음이 다급해진다.


"소야~ 많이 묵었제? 인자 집에 가재이~~"


소는 양이 좀 부족한지 그 큰 눈으로 더 먹고 싶다고 말을 하는 듯했지만 난 못 본 척 목줄을 잡아끌었다. 못내 아쉬운 듯한 소는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이끌려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 문을 들어서기가 무섭게 아버지가 버럭 화를 내신다.


"아니 이 년아~! 소 밥을 먹인거여! 마실을 다녀온거여! 그렇게 번갯불에 콩 궈먹듯 댕겨오면 소가 배가 차긋냐, 안 차긋냐! 얼른 후딱 다시 안 가냐!"


"아부지... 지금 저 짝에 친구들 벨써 학교 가는데 나도 인자 가야 하는..."


"아니 그래도 이 년이 얼렁 안 나가~!!"

어머니는 장작불로 가마솥밥을 지으시느라 나와보지도 못하고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눈짓으로 얼른 나가라는 무언의 표정만 급히 지을 뿐...

어쩔 수 없다. 마당에 싸래빗자루로 또 맞지 않으려면 도로 가는 수밖에...

소를 데리고 왔던 길을 다시 또 올라간다. 소는 먹을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운데 난 학교에 어서 가고 싶은 마음이라 무거운 발을 억지로 옮긴다. 이번에도 지각하면 선생님이 벌로 화장실 청소를 시킬 거라고 하셨는데 냄새 나는 화장실 청소는 정말이지 하기 싫다.

먹을 만한 풀이 제법 있는 곳으로 올라왔더니 그사이 해가 높이 떠서 풀잎에 이슬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소야. 얼른 먹자. 소야. 얼른 먹어.


소는 위가 네 개라고 했다. 그래서 되새김질을 한다고 들은 기억이 났다. 이놈의 소는 씹었다가 다시 게워내 되새김질을 하느라 계속 입이 우물우물이다. 이놈아. 지금 게워내지 말고 얼른 풀을 뜯어서 우선 입에 넣으라구... 어여 먹어. 어여.

...

그래 이만하면 됐겠지 하고 소를 끌고 집으로 가려는데 저어기 멀리 학교 가는 길에 한 아이가 뛰다시피 가고 있다. 저 아이는 지각쟁이로 소문난 아이인데 저 아이가 뛰어가는 거면... 난???

큰일이다. 소목줄을 당겼다. 그리고 서둘러 내려갔다. 마음 같아선 소를 어깨에 메고 뛰고 싶다.


겨우 집에 도착해서 책보를 잡아 어깨에 둘러메고 고무신을 대충 구겨 신고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온동네 잔치 같던 운동회가 참 좋았다. 6명씩 단거리 달리기를 했는데 내가 자랑스럽게도 일등을 했었기 때문이다. 손목에 찍어주던 도장을 보여주고 연필을 받으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그래 나는 지금 달리기 시합을 하고 있는 거야. 빨리 가면 지각은 면하겠지.'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드디어 학교 교실 도착. 할딱거리는 숨을 재빨리 한 번 고르고는 교실문을 사알짝 열었다. 조용하다. 이미 수업은 시작되었고 아이들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일제히 뒤를 돌아 나를 쳐다보았다.


"최복순~! 지각하지 말라고 했지? 지각했으니 너 오늘 화장실 청소다!"





... 방과 후...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같은 반, 부자로 소문난 우리 옆집 사는 미자는 친구들과 내일 보자며 인사하는 소리가 들린다.


'안돼.. 가지 마... 미자야... 친구들이랑 조금만 더 놀다 가라고...'

난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맨날 미자 이야기를 하셨다.


"미자는 학교 끝나면 바로바로 집에 와서 집안일을 거드는데 너는 만날 학교 끝나면 뭘 처하고 있길래 이렇게 집에 늦게 오는거여~!!! 이놈의 가시나가!!!"

아버지 때문이라고, 아버지가 소를 두 번이나 먹이라고 하지 않았으면 지각하지 않았을 거고 지각을 안 했으면 난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렇게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마음속으로만 외칠뿐 그 입바른 소리는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꺼내었다간 어디 고개 빳빳이 쳐들고 어른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대꾸냐며 더 혼날 것이 뻔하다...






우리 엄마가 맨날 서럽게 이야기 하시던 레퍼토리이다.

난 이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었다. 언제 그런 날이 올까 싶지만 엄마 이야기를 책으로 내볼까도 했었고... 너무 자주 들어서 내가 꼭 그 시대에 살았던 것 같은 착각도 든다.

난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화가 나고 속이 상한다.

외할아버지는 왜 그리 엄마 이야기를 안 들어주고 일만 시키셨을까. 왜 한 번도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보려 하지 않으셨을까.

안다. 삶이 녹록지 않고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없던 시대였다는 걸. 하지만 속상하고 답답함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외할아버지만 그러신 건 아니고 그 당시 어르신들은 다 그러셨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다. 40대인 나조차도 어릴 때 많이 들었던 이야기니까. 어른들이 말씀하실 땐 말대꾸는 절대 안 되고 혼날 때는 머리를 숙이고 있어야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어르신 눈은 쳐다봐서도 안 된다는 것을...


오늘 괜스레 엄마 생각이 난다. 왜 그리 힘든 시절에 고생만 잔뜩 하셨는지 불쌍하고 안타까운 우리 엄마...
돌아오는 주말은 이제 누가 봐도 할머니라 부르는 우리 엄마 보러 친정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


아직도 내 기억은 젊은 날의 엄마 모습이 선한데 언제 그리 흰 머리 가득한 할머니가 되신 건지...




https://youtu.be/kTWajMK0zz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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