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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정작가 Nov 17. 2024

일년이 오계절이라면

 일 년이 사계절이 아닌 오 계절이면 어떨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아닌 마리골드 마법의 동네처럼 행복만 가능한 계절이 하나 더 있다면 행복할까? 고통, 분노, 우울한 감정이 없는 사랑만 있는 나라에서 산다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오늘이 교사 동아리 올해의 글 마감이 아니라 인생을 마감하는 날이라면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노트북 옆에 있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잔 마시며 잠시 올 한 해를 생각해 본다. 


커피 한 모금

  노란 꽃들이 슬슬 자기 색을 뽐내려 준비하는 따뜻한 봄날에 그녀들을 만났다. 몸은 분리되어 있지만, 그녀들은 정신세계는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한날한시에 아프고, 한날한시에 중요한 일이 있고, 심지어 생리도 한날한시에 한다. 무엇이 그녀들을 삶을 하나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하게 묶어놓았을까. 아직 중학생이라 생각하는 게 어려서 그런가. 아니면 여럿이 함께하면 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집단 심리적 현상인가. 그렇다면 두 명은 개인인가 집단인가.


커피 두 모금 

  개나리꽃이 피었다. 어릴 적 마당에서 땅따먹기 하고 놀던 나를 밥을 먹자고 집으로 데려가며 엄마가 말했다. 개나리꽃이 피면 우리 작은딸 생일이야. 그날부터 개나리꽃이 피면 행복했다. 작고 귀여운 꽃 이름 앞에 ‘개’라는 단어를 붙여놓은 것도 모른 채 그냥 노란색이 좋았다. 그날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아침을 시작했다. 생일 축하한다며 지인들에게 커피 쿠폰도 선물을 받았다. 이유 없이 기분 좋은 날이다. 아니 이유가 있었다. 내 생일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내게 크게 화를 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나는 아이가 원하는 데로 다 해줬고, 최선을 다해 애를 키웠어요. 나는 아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달라고 다시 한번 정중히 요청했다. 아이들의 행동이 잘한 것은 아니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업무가 있으니 다음에 통화하자고 통보한 후 울부짖는 그녀의 어머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통화였다. 나중에 전해 들었다. 그날 밤 그녀의 어머니는 여기저기 전화하며 힘듦과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고. 심장이 뚫린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내 몸에 있는 피가 서서히 빠져나가 한 방울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내가 이야기를 더 들어주었다면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삶이 바뀌었을까. 매일 한 잔의 여유라고 생각했던 커피가 유난히 쓰다. 


커피 세 모금

  아이들이 더위에 지쳐있다. 원래도 공부하기 싫어했던 아이들이지만, 더워서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믿어 주어도 될 것 같았다. 나도 원래 출근하기 싫었지만, 더 출근하기 싫었으니까. 봄부터 뜨거운 여름까지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출근했다가 퇴근하고, 집에서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한 기억밖에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그러나 죽고 싶지는 않았다. 덥고 지치고 모는 것이 의미 없는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안에 행복한 삶에 대한 욕구가 남아있었다. 무식하게 책을 읽고, 내 안에 있는 한을 뿜어내듯 글을 쓴 기억이 남아있다. 혹시 나도 그녀의 어머니처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호소하는 것은 아닐까. 다르다고 생각했던 오만한 내 삶이 부끄러웠다. 갑자기 나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라 씩씩거리다가. 스스로 위로도 한다.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심장에서 심한 파동을 일어나 목이 마른다. 식은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커피를 담은 종이컵이 가벼워졌다. 혹시나 하고 플라스틱 뚜껑을 열고 하고 열어봤는데 커피가 없다. 바닥이 드러난 종이컵을 흔들어 보니 반 모금 정도 남은 것 같다. 거칠게 컵을 흔들어 남아있는 커피를 내 목구멍으로 털어놓았다. 갈증은 더욱 심해졌다. 미친 듯이 많이 몰려있던 가을의 업무가 지나갔고, 너무 춥지도 않고 덥지도 날씨에 가을비를 주제로 우아하게 시를 쓰기도 했다. 나를 유독 아껴주던 그 사람을 생각하기도 했다. 1,500원짜리 커피 한 잔을 다 마셨을 뿐인데, 내 안에 무언가가 소진된 것처럼 허전하다. 


  노트북을 들고 아무 이유도 말하지 않고 밖으로 나간다고 통보하는 나를 보며 불만 가득한 남편의 표정이 떠오른다. 내 옆 널브러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빈 종이컵처럼 내 삶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무엇이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생각해 보았다. 남편이 원하는 데로 한가정의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희생하면서 살아야 의미 있는 삶인가? 직장에서 원하는 데로 성실하게 일하고 학생들의 아픔을 공감해 주고 보듬어주어야 진정한 교사인가? 내가 원하는 나를 위한 삶을 살면, 그들에게 지탄받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가? 어떻게 조율해야 할까. 무엇을 어떻게 하고 살아야 곧 다가올 혹독한 추위를 견딜 수 있을까. 


  따뜻한 커피를 한잔 더 사려고 빈 종이컵을 들고나갔다. 아직은 빳빳한 종이컵을 버리기 아까워서 가끔 쓰던 종이컵을 내밀고 여기에 커피를 담아 달라고 요청한다. 자주 가던 도서관 앞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커피숍 문이 닫혔다. 아쉽네. 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가 너 준다고 김치 한 통 담아놨어. 네가 안 와서 우리 집에 가져다 둘 테니 내일 퇴근할 때 들려서 가지고 가. 전화기 뒤로 엄마의 퉁명스러운 말소리가 들린다. 너는 내 걱정 하지 말고 너 시어머니한테나 잘해라. 쓰고 있는 글을 마감하고 엄마한테 가려던 참이었다. 내 마음대로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은 없구나. 안타깝고 아쉽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나는 모르지만, 그들이 원하는 무엇인가 있는데, 내가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은 걸까? 개나리꽃이 노랗게 가득 핀 날 나에게 원망 가득한 목소리로 울부짖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친다. 


 “괜찮아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부디 고통 없는 그곳에서 당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슬퍼하지 않기를…. 그리고 미안해요. 당신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못해서…. 살다 보면 의도하지 않게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잖아요. 그게 모두 내 탓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잖아요”


  수잔 루드베키아는 봄부터 가을까지 황금빛 노란색을 뽐낸다. 누군가 말했다. 개나리꽃의 개는 가짜를 의미한다고. 가짜 나리꽃 개나리꽃. 잠시 생각해 봤다. 앞으로 내 생일에 개나리꽃이 아닌 수잔 루드베키아를 떠올릴까. 황금빛 노란색이 너무 예쁘고 설레지만,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작고 귀여운 내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개나리꽃이 좋다. 사람들이 가짜라고 해도. 나에게는 진짜니까. 다만 영원한 행복이라는 의미가 담긴 꽃말은 가슴에 담아 두고 싶다. 


 “고통 없는 그곳에서 혹시 슬퍼하고 있을까봐. 당신에게 수잔 루드베키아 꽃 한 송이 선물해 드려도 될까요? 당신이 가는 그 길 개나리꽃 지르밟고 가셔요. 봄 여름 가을 수잔 루드베키아. 그렇게 황금빛 꽃 한 송이 마음에 품고 있다면 혹독한 겨울이 와도 고요하게 견딜 수 있지 않을까요? 다들 손가락질하며 잘못했다고 해도 우리 같이 견뎌요. 황금빛 오계절을 꿈꾸며.”



  핸드폰으로 근처 커피숍을 검색했다. 커피숍이 너무 많다. 가까운 커피숍을 찾았다. 여기에 따뜻한 커피 한잔 담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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