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간절히 믿고 소망한다면 이루어진다

by 책읽는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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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레옹 제롬,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1890년경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는 프랑스 화가이자 조각가인 장 레옹 제롬의 작품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이 자신의 창조물인 조각상과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포착하여 약간의 에로티시즘이 느껴지게 표현했다. 사람이 조각상을 사랑하다니,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허무맹랑하기도 한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상상만으로도 설렌다.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고대 그리스의 섬 키프로스에 왕이자 조각가인 피그말리온이 살았다. 그는 여성의 결함과 불완전함을 이유로 세상의 여자들에게 냉담했고, 아무 여자도 사랑하지 않았다. 예술적 재능이 있는 그는 결국 자신이 사랑하고 싶은 아름다운 여인을 조각했다. 피그말리온은 아주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아름다운 조각을 완성했다. 조각이 완성되자 피그말리온은 조각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온종일 조각만 바라보았다. 조각상에 사랑을 속삭였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기도 했다. 그는 온종일 아름다운 여인을 보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가슴 아파했다. 피그말리온은 조각상으로만 바라보아야 하는 여인을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찾아가 자신의 사랑을 이루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터무니없는 소원을 빌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슬픔에 젖어서 자신이 만든 조각을 꼭 끌어안았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슬퍼하던 그때였다. 차갑기만 했던 조각상에서 온기가 느껴지는 것 아닌가. 그의 성실함과 헌신에 감동한 아프로디테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피그말리온은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러자 한 가닥 따스한 기운이 입술을 통해 온몸으로 스며들기 시작했고, 그녀의 심장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피그말리온의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피그말리온은 기뻐 감사하며 조각상에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후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는 깊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피그말리온의 사랑 이야기는 변화를 일으키는 사랑의 힘과 진정한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 있다는 사고의 상징이 되었다. 결국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피그말리온 이야기는 수 세기에 걸쳐 다양한 형태의 문학, 연극, 예술에서 회자하며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창의적인 작품에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피그말리온 효과’의 유래가 되었다.


자기실현적 예언 또는 로젠탈 효과라고도 알려진 피그말리온 효과는 기대가 높을수록 성과가 높아지는 심리적 현상이다. 이 용어는 앞에서 살펴본 고대 그리스 신화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만든 갈라테이아라는 조각상과 사랑에 빠졌고, 그의 뜨거운 사랑과 기대로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심리학과 교육의 맥락에서 피그말리온 효과는 1960년대 심리학자 로버트 로젠탈과 교장 레노버 제이컵슨에 의해 처음 연구되었다. 그들은 '교실 속의 피그말리온'으로 알려진 영향력 있는 연구를 수행했다. 이 연구에서 교사들은 특정 학생들이 IQ 테스트에서 예외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내년에 상당한 지적 성장 가능성을 지닌 '매우 우수한 학생'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학생들이 무작위로 선발되었으며 실제 시험 점수는 동료 학생들보다 높지 않았다. 선발된 학생들은 다른 급우들에 비해 학업 성취도가 훨씬 더 향상되었다. 교사가 특정 학생이 높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게 되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해당 학생을 다르게 대우하여 지적 발달을 위한 보다 긍정적인 강화, 격려와 기회를 제공했다. 학생들은 기대에 반응했던 것이고, 기대가 행동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위의 연구처럼 학생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긍정적인 기대를 부응하여 학업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그 결과로 학생의 학업 성적이 향상되었다.


긍정적인 기대는 학생들에게 자긍심을 만들어주며, 학생들은 믿음과 기대를 부응한다. 이는 개인의 행동과 성취에 강력한 영향을 준다. 그러나 부정적인 기대나 믿음은 그에 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피그말리온 효과는 사람과 사람과의 상호작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사람의 변화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필자가 근무했던 중학교에서도 피그말리온 이야기와 로버트 로젠탈의 실험이 연상되는 사례가 있었다. 새로운 학교에서 담임교사를 배정받은 날이었다. 기존에 근무하던 선생님들은 낯선 얼굴이었지만 친절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선생님 혼자가 아니에요. 힘든 일 있으면 도움을 요청하세요. 다 같이 함께 해결해요.”

상냥한 목소리였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다. 처음 보는 동료 교사에게 ‘환영합니다’라는 인사가 아닌 ‘혼자가 아니에요’라니, 배정받은 학급에 지도하기 힘든 아이가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학년을 총괄하는 부장 교사도 진지한 표정으로 힘든 일 있으면 혼자 결정하지 말고 상의해달라는 말에 내 직감에 확신을 생겼다. 순간 머릿속에서 다양한 생각들이 나를 어둠으로 몰고 갔다. ‘도대체 무슨 사고를 쳤을까?’ ‘기존에 교사들은 감당하기 싫으니 새로 전입해 온 교사에게 미루었나?’ ‘나한테 힘든 일을 미루는 건가? 내가 만만해 보이나?’ ‘올해 똥 밟은 해인가?’


며칠 짜증이 밀려왔지만, 단순한 결론을 내렸다. 안 좋은 상황이 생기면 그때 생각하기로 했다. 필자는 평소대로 처음 보는 모든 학생에게 똑같이 친절하게 대했고, 잘못한 일은 똑같이 지도했다. 장난이 조금 심하고, 말을 거칠게 하는 아이가 있긴 했으나 중학교 교실에서 흔히 보이는 아이였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새 학기가 한 달쯤 지났다. 학급은 큰일 없이 무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동료 교사 한 명이 진지한 억양으로 내게 질문했다.


“선생님 상준이(가명) 수업 시간에 수업 방해하는 거 괜찮아요?”

“네, 그 정도는 뭐 다른 아이들도 흔히 하는 행동이니까요. 가끔 조금 과할 때도 있지만, 잘못된 행동을 보일 때 생활 지도하면 수긍해요. 그래서 특별히 문제 되는 건 없어요.”

“아이가 선생님에게 장난하면서 수업 방해할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아이 행동에 반응하지 않아요. 눈빛으로 안 된다고 표현하고, 수업을 계속 진행해요”

“아 선생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왜요?”

“다른 선생님들은 그 아이를 너무 힘들어하거든요. 사실 그 아이가 작년에 화가 나서 선생님 노트북을 던져버린 아이거든요. 학교 폭력도 여러 번 있었고요.”

“아··· 그랬군요”


그때부터 공부하기 싫은 장난꾸러기 상준이가 문제아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준이는 한 달 동안 필자와 긍정적인 소통을 하면서 내게 이미 마음의 문을 열어버린 상태였다. 과거 아이의 잘못으로 여러 선생님의 부정적인 기대와 믿음이 상준이를 더욱 문제아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교장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힘든 아이 담임을 배정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필자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작년에는 하루 7시간 수업 중 6시간을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복도에 돌아다녀서 모든 교직원이 그 아이를 찾아다녔는데, 올해는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하셨다. 킥복싱 경기에서 상대 선수에게 주먹으로 강력히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배신감이 밀려왔다. 이 모든 말을 내게 전해주지 않고, 교사 대부분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 아닌가. 그러나 교장 선생님의 마지막 한마디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기존 선생님들은 힘들었던 일이 많아서 아이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봐주지 못할 것 같았어요. 선생님께는 미안하지만, 아이에게는 새로운 선생님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새 학기를 시작하는 게 좋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정 선생님의 경험과 인품이 아이를 따뜻하게 감싸 주실 것 같아서 그런 선택을 했습니다. 잘 지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자기 마음이 숙연해졌다. 사실 필자는 특별히 한 게 없었다. 가끔 상준이가 작년보다 많이 나아졌다는 말을 듣고, 영혼 없이 “그래 잘하고 있어”라고 대답한 게 전부였다. 상준이에게도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듯 보였다. 아직도 또래와 비교해 많이 실수하고 미숙하지만 말이다. 이후 나는 의도적으로 상준이에게 좋은 말을 하기로 했다. “선생님은 상준이 믿는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잘했어, 멋있다”, “그럴 수도 있지”, “다음에 더 잘하자”, “힘내자”, “할 수 있다” 긍정적인 기대와 따뜻한 한마디로 상준이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마치 피그말리온의 창조물인 차가운 조각상이 간절한 바람으로 따듯한 온기를 만나듯이. 상준이는 이제 수업 시간에 복도에서 돌아다니는 일은 없다. 아파 보이지는 않지만 피곤하다고 보건실에 누워있기는 한다. 소소하게 모둠 활동에 수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변화는 아직 미약하지만 상준이의 변화에 만족한다. 작은 변화가 상준이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아무도 모르니까. 그러니 긍정적인 말 한마디 건넬 수 있지 않은가.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이야기는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동시에 관람자에게 아름다움과 선사한다. 또한 현재를 조각상처럼 차갑게 사는 우리에게도 따뜻한 온기를 전해준다. 무언가를 믿고 간절히 바란다면 그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인가. 피그말리온처럼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일을 간절히 믿고 소망해보면 어떨까? 마음 약한 어느 신이 소원을 이루어 줄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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