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했던 고3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밤잠을 설칠 정도로 엄청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떤 사람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꿈에서 수능 시험을 보기도 하고 수학 문제를 풀다 문제를 다 풀기도 전에 시험 시간이 끝나서 답안지를 뺏기는 악몽에 시달린다고 했다. 대입 시험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절감할 수 밖에 없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집안에서 첫 번째로 대입을 치른 언니가 주르륵 낙방을 하는 것을 보고, 공부하려니 참 그 고비가 죽을 맛이었다. 대통령 때문에 과외를 받을 수도 없었지만, 그 시절 대학생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 주었던 몰래바이트를 해 줄 언니나 오빠도 없었던 나나 친구들은 그저 학교 마치고 독서실에 가서 공부한다고 끙끙거리다가 집에 가는 그런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우리 동네 독서실 주인 아저씨가 워낙 깐깐해서 독서실 규칙을 지켜야 자리보전하고 공부할 수 있었다. 시험 때가 되기라도 하면 예약을 해야 자리를 얻을 수가 있을 정도로 독서실 자리 경쟁이 치열했다.
한번은 이런저런 이유로 집에서 공부를 할 수 없었던 탓에 독서실에 가야 했다. 그러나 독서실에 자리가 없었다. 그때 어머니는 독서실 아저씨에게 달려가서 자리를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얼마의 돈으로 자리를 얻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독서실 주인 아저씨는 공부 태도가 안 좋다며 한 친구를 내보냈고, 난 그 자리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리고 대학생이 된 후에도 학교를 가다가 동네에서 그 친구를 우연히 만나기라도 하면, 그 친구 앞에서 똑바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못 본 척하고 뒤돌아서 가면, 내 등 뒤로 그 친구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진땀을 흘려야 했다.
학력고사 한 달 전쯤 되자 독서실에는 서늘할 정도로 긴장감이 돌았고 심지어 어떤 친구는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며 울어버렸다. 그 친구의 울음에 나 역시 눈물을 머금고 꺼이꺼이 울면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는 거의 포기한 상태로 학력고사를 봤다. 합격자 발표날이 다가오자 결과를 알 수 없어서 마음속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합격자 발표날, 나는 당락을 확인할 마음조차 먹지 못할 정도로 포기를 했고, 어머니는 말없이 집 부엌 바닥에 앉아서 콩나물만 다듬으셨다. 나역시 어머니 옆에 앉아서 어머니가 콩나물을 다듬으시는 것을 말없이 지켜 보기만 했다.
어떻게 해서 학교까지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합격 여부를 알 수 있지만 그때에는 합격자 이름과 접수번호를 학교 안 게시판에 붙여 놓아서 학교를 가야 합격 여부를 알 수 있었다. 학교에 전화를 해도 알 수 있었을텐데. 여하튼 그날 늦은 오후가 되서야 학교에 갔다. 그리고는 문과대 앞 게시판에 내 이름 석자가 있는 것을 보고는 엄마와 나는 감격하며 눈물을 흘리며 서로 껴안았다.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포옹이었다. 그때 나도 엄마도 너무 말라서 서로에게서 포근함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 후로 힘겨운 등록금 조달이 시작되었고 내가 장학금이라도 받으면 어머니는 나에게 잘했다는 말 대신 시장에 가실 때 나를 데리고 장을 보시면서
"얘가 장학금을 받았다우.“
하시며 동네 자랑을 하고 다니셨다. 그때만 해도
"우리 딸은 공부하는 걸 좋다고 하네요. 호호호.“
하셨는데 내가 길 장자의 장학생이 되자
"이노무 혹을 어디 산에다가 갔다, 버릴 수도 없고. 에휴“
하시더니 급기야
"말 안들으면 내쫓는다.“
하셨는데 결국 나는 온수매트와 남비 하나 들고 집을 나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