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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장복 Oct 30. 2024

023 뿌아아아아앙

뿌아아아아앙_graphite, marker, acrylic on linen_180x165cm_2023, 24

023


10월 28일


<소년이 온다>를 읽는다. 바다의 표면에 일었다가 사그라드는 흰 파도처럼, 소년이 온다. 쏟아진 반투명한 내장과, 방아쇠를 당긴 따뜻한 손가락과, 쏘라고 말하는 자의 눈을 생각하는, 자판 위 희고 가는 손가락이 보인다.


보병학교의 내무반 귀퉁이에 차려놓은 임시 상황실에서 한꺼번에 일곱 통까지 뭉툭한 군용 전화기를 얼굴에 붙이고 잔존하는 교전상황을 보고받는 병사의 모습이 보인다.

CS 123 456.. 좌뇌함몰.. 우뇌함몰.. 진짭니까? 외마디에 가까운 떨리는 목소리가 텅 빈 뇌를 반복해서 울린다. 추임새처럼 얇은 침묵이 끼어든다.


이 모든 소란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늦은 봄날 막 임관한 동창생을 만나 아무 일 없는 듯 주절주절 추억을 나눈다. 짙은 꽃내음을 크게 들이쉬더니 들이붓다시피 마신 소주와 꾸역꾸역 섭취한 음식물을 모조리 토해낸다. 빈 내장을 훑고 나오는 썩은내를 가뿐 날숨으로 뱉어낸다. 알아들을 수 없는 짐승의 소리를 내며 깜깜한 상무대의 서늘한 연병장을 벌써 몇 바퀴째 돌고 있다.


그날 이후 예고 없이 칠흑 같은 밤바다가 머릿속에서 가릉거린다. 어린아이의 흰 이빨 같은 파도를 뇌벽에 새겨 놓기라도 할 듯이 가르릉거린다. 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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