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장복 Nov 25. 2021

그리고 싶은 그림과 그릴 수 있는 그림이 다른 걸까?

늦가을이른새벽_oil on linen_65.1x90.9cm, 2015-2

늦가을이른새벽_oil on linen_65.1x90.9cm, 2015-21


잠 못 들어 맞이하는 새벽이다. 어릴 적엔 오늘이 끝나는 게 싫어 감기는 눈을 뜨고 있었고 지금은 내일이 오지 않을지도 몰라 두 눈을 뜨고 있다. 옅은 어둠 사이로 뜬금없이 떠오르는 의문 하나.. 그리고 싶은 그림과 그릴 수 있는 그림이 다른 걸까?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할 때 두 가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나도 저 화가처럼 저렇게 그리고 싶은 거라면 이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에 가깝다. '유명한 화가가 되고 싶다'는 말이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그렇다. 허나 내 안의 욕망이 가리키는 불확정적인 뭔가를 그리고 싶은 거라면 다르다. 내 밖에 있어 애초에 불가능, 그리고 싶을 걸 포기하면 자연스레 그릴 수 있는 걸 그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그리다 보면 그릴  수 있는 걸 그리고 싶게 된다.


그릴 수 있는 걸 그리다 보면 그 안에서 그리고 싶은 게 생기기 마련이다. 동전 옆의 동전을 발견하는 꿈처럼 그렇다. 그릴 수 있는 건 지금 일어나는 사건이고, 그리고 싶은 건 도래하는 사건이다. 둘은 시간의 선분적 흐름 위에 있다. 그릴 수 있는 그림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부르며 시간차를 두고 포개질 뿐이다. 그렇다면 그리고 싶은 것이 그릴 수 있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그릴 수 있는 것이 그리고 싶은 것이다. 2021.11.25 륮

작가의 이전글 뒤뜰에서백일홍을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