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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장복 Dec 09. 2021

2007.7.18 철암천변에서

_oil on cotton_100x100cm_2008, 21

2007.7.18 철암천변에서_oil on cotton_100x100cm_2008, 21

철암천을 따라 난 철암로의 가운데쯤 철암 역사가 있다. 역사 앞 녹슨 철다리를 건너면 신설동이었다. 집들이 산 밑자락에 따개비마냥 붙어있었고 극장 간판도 여전히 붙어있었으며 당구장도, 여인숙도 있었다. 어느 핸가, 싹 철거하고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생뚱맞았다.


신설동이 철거된 후 내리찍는 햇살을 피할 길이 없는 공원의 귀퉁이에 덩그러니 남아 바라보는 풍경은 같은데 같지 않았다. 주변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계절이 거듭 바뀌면서 빛과 공기와 온갖 생명질의 기운이 변했다.


화구를 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풍경은 두 팔을 펼쳐 오목한 공간을 만들었다. 미끄러지듯이 볼록에서 오목으로 바뀐 공간에 들어서자 풍경은 풍광으로 달라졌다. 그때부터 산란하는 빛의 흔들림 속에서 생명질의 아우성을 들을 수 있었다.


협곡을 따라 넓은 개천 수준의 철암천이 흘렀다. 철암천 바닥에 집집마다 수십 개의 까치발을 세우고 다다닥 붙어 상가를 이루고 있었다. 멀리 철암천을 가로지르는 남동 다리가 보였고 더 멀리 산을 구멍 낸 터널이 보였다. 그리고 파란 하늘에 뭍의 생명 소리를 담아 생물처럼 뭉실거리는 뭉게구름이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2007.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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