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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장복 Dec 16. 2021

철암랩소디-설산야경

_oil on linen_116.8x433.6cm_2018-20

철암랩소디-설산야경 _oil on linen_116.8x433.6cm_2018-20

탄광촌 철암의 겨울산이 좋다. 기억 속에서 눈 덮인 산이 꿈틀거렸고 눈앞의 겨울산이 그 기억과 더불어 또 꿈틀거렸다. 누구나 경험한 걸 그리워한다. 눈앞의 산과 기억 속의 산이 신기루처럼 중첩되었다.


흡, 숨을 다잡는다. 붓대를 밀고 당기며 허공을 가다 보면 진공의 무풍지대를 만난다. 그때 자연의 안쪽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의 흐름을 관조하리라.

밭가는 소의 어깻죽지를 닮은 산등성이가 묵직하다. 산기슭의 판잣집에 사람 사는 흔적이 희미하다. 광부가 검은 노다지를 찾아 땅속을 헤집고 다닌다.

어둠 속에서 검은 것은 묵살당한다. 더 흰 것을 받치며 밤의 묵묵함을 더해줄 뿐이다. 희지도 검지도 않은 것들이 희지도 검지도 않게 밤의 시야를 대부분 차지한다.

밤은 쉼이다. 모든 것이 가능태로 남는다. 낮의 교향곡은 밤의 숨소리로, 낮의 반짝임은 밤의 번뜩임으로 대체된다.

산이 꿈틀거린다. 꿈틀거림 속에 뭔가 잉태된다. 큰 우주가 작은 우주로 반복되듯이 꿈틀거림이 꿈틀거림으로 이어진다.


"추운데 뭐하슈?"


삼방동 언덕에서 겨울산에 한창 몰두해 있을 때 중늙은이의 갈라진 쉰 목소리가 들렸다. 낮을 삼킨 밤처럼 한 점으로 웅크린 채 낮 동안의 기억을 되새김질하다가 화들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우물에 빠진 새앙쥐가 끌려 나온 꼴이었다. 구출이었나..? 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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