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이 자연을 남용하고 파괴한 결과로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현 인류는 자연 파괴를 막아야 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로 ‘죄 없는 후손들이 우리로 인해 피해를 본다’는 주장을 한다. 물론 틀린 말이라고 볼 수 없으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으며,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환생한다고 믿는 불교의 관점에서는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다(물론 이는 필자의 사적인 해석일 뿐이며, 모든 불교 신자가 이와 같은 견해를 갖는 것은 아니다.)
우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연기설로 불리며, 흔히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수행하며 처음 깨달은 진리로 알려져 있다. 연기설은 모든 것이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어떤 한 사건도 다른 사건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적고 있는 이 글은 석가모니의 사상을 알고 있기에 적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석가모니의 부모님이 석가를 키울 만한 재력이 없었다면 석가의 어린 시절은 우리가 아는 모습과 달랐을 것이고, 그로 인해 그의 사상이 전해지지 않았다면 나는 이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지금 이 글조차 독립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영향 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연기설을 이해했다면 이제 업을 이해할 차례다. 업이란 ‘의도적인 행위’로 인해 생기는 결과인데, 여기서 말하는 행위는 단지 행동뿐 아니라 말, 심지어 생각까지도 포함된다. 업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악의를 가지고 행동하지 않고 속으로 나쁜 생각만 했더라도 그것은 나쁜 업이 쌓이는 행위다. 생각조차도 악업이 될 수 있으며, 업의 내용에 따라 다음 생(불교에서는 계속해서 환생한다는 윤회설을 믿는다)에 어떻게 태어날지가 결정된다. 선업을 쌓을수록 좋은 방향으로 환생한다는 점은 기억해 두면 좋겠다.
필자의 주장의 핵심은 ‘피해를 보는 후손들이 죄가 없다고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유가 궁금하다면 앞서 이야기한 연기설의 핵심을 다시 떠올려보자.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미래의 후손들이 피해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 인류의 무분별한 자연 파괴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 파괴는 불교에서 보면 명백히 악업을 쌓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죽게 되면 환생할 것이고, 이후 또 자연을 남용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한 끝에,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후쯤 지구온난화로 인해 인류 멸망이 가까워진 상태라고 가정해 보자. 전생에 악업을 지었지만 환생했기 때문에, 그 시대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닌 조상의 잘못을 탓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전생의 자신이 지은 업의 결과인 것이다. 업은 생각도 포함되기에, 전생에 나무를 한 번도 자르지 않고 자연을 파괴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자연 파괴를 막지 않고 ‘귀찮다’, ‘내 일 아니다’ 하며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그것 또한 업이다. 직접적으로 자연을 파괴하지 않은 사람들도 전생의 악업으로 인해 미래에 피해를 보는 것이므로, 죄 없는 후손들이 피해를 본다는 주장은 불교의 세계관에서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자연 파괴로 인한 피해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며, 혹은 ‘내가 나서도 변하는 건 없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업을 짓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그래서 필자의 미숙한 글솜씨로나마 인식을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혹시라도 궁금한 점이 있거나 필자의 불교 설명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