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다닐 때 저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니지만 그때는 뭔가 심각했죠. 바로.. 사람들은 저를 착하다고 하는데 저는 착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뭔 소리냐면.. 제가 사람들 앞에서 잘 웃고 밝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진심이 아니라는 것이었죠. 별로 좋지 않은 데도 그냥 상대방 비위 맞추려고 웃거나 부탁을 들어주거나 했던 거니까요. 그래서 저는 진심으로 '착하지 못하고' 착한 척만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제가 마냥 밝고 착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제가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고, 또 그 사람들의 생각대로 한답시고 밝은 척 진심으로 우러나서 상대의 부탁을 듣는 척한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나의 모습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내 칭찬을 해도 '저 사람들은 내 진짜 모습을 몰라서 그러는 거야..'라면서 저를 깎아내렸습니다. 제가 제 자존감을 깎아먹었던 것이죠..
그런데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이를 먹고 나니 그게 과연 그렇게 죄책감 가질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요즘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닙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착한 척을 잘하는 것 같아..!' 하고 말이죠. 워낙에 남들 눈에 들고 싶어 하는 삶을 오래 살았어서 그런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나를 착하게 보고 나한테 경계를 푸는지, 어떤 말투와 표정이 그렇게 만드는지를 알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고 해야 할까요? 특히 전화통화할 때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순진한 사람처럼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있죠..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는 상대의 마음에 들려고 나의 자존감을 깎아가며 그랬다면 요즘은 제 필요에 따라 꺼내는 '능력'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죠. 사람들을 대할 때 이건 참 큰 이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능력이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안도감이나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이게 과연 잘못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요즘은 마음 놓고 착한 척을 합니다. 사람인 이상 언제나 제 표정이나 말투가 제 진심과 같을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따뜻한 표정이나 말투가 나온다면 즉 '착한 척'을 장착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상대에게 위로를 주고, 안심시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면 그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 오히려 좋은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진실된 마음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걸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표현을 하는 '착한 척'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 붙지요.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제가 말하는 '착한 척'은 사람을 이간질시키거나 다른 사람을 찍어 누르기 위한 것이 아니에요. 이 사람을 위하는 척하고 착한 척하다가 다른 사람들 앞에 가서 뒤통수치는 건 제가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는 것이라면 당연히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 겁니다.
제가 말하는 '착한 척을 열심히 하라'는 것의 포인트는 다른 이에게 뭔가 도움을 주었을 때 내 진심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죠. 어찌 되었든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는데 굳이 내 진심이 아니었다면서 나를, 내 자존감을 깎아내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사람은 언제나 한결같을 수 없어요.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마세요. 언제나 한결같이 남을 위하고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은 있다 하더라도 전 세계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그게 우리는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신한테 불가능한 잣대를 대지는 마세요. 그것은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니까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나요? 그럼 여러분은 좋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내면을 너무 후벼 파지 마세요. 누군가가 고마움을 표현한다면 당당히 그 감사를 받고 내 자존감을 채우세요. 그러다 보면 좀 더 여유롭게 변해가는 나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생각보다 괜찮은 우리를 위로해주고, 그 정도는 괜찮다고 자신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스스로의 자존감을 잘 다독여 줄 수 있는 우리가 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금 더 여유롭고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고 다른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영리한 호구'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