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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리한 호구 Oct 13. 2024

인생은 오답을 피하는 여정

 저는 연기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11월에 연극공연 하나를 준비하고 있지요. 지금까지 했던 학원 공연들과는 다르게 '2인극 페스티벌' 이라는 대회(?)에서 공연하는 것으로 유료공연으로 진행됩니다. 지인들이 아닌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 그것도 '돈 내고 보러온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출연료도 받습니다..ㅎ) 


 역시 연극 공연을 하려면 대본을 외워야 겠죠. 대본을 완벽하게 외우면.. 끝일까요? 아닙니다. 거기부터 '시작'이죠. 연기를 배우기 전에는 대본을 외우고 그대로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지만 연기를 하면 할 수록 내 생각이 지나치게 얕았음을 느끼곤 합니다. 생각보다 대본에서 정해주는 내용이 없습니다. 물론 어떤 문장을 이야기 하라는 '대사'나 정말 중요한 동선이나 감정들은 지문의 형태로 알려주긴 합니다. 하지만 그 이외의 것은 일차적으로는 배우가 만들어 내야 합니다.  


 저희 공연의 첫 장면이 우주선이 사고가 난 장면인데, 그 장면의 "피해상황 보고해!!"라는 한 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어떤 것이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 재미가 있을지 수십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합니다. 삶의 의욕을 잃고 힘없이 이야기 할지, 아니면 사고를 수습하려고 뛰어다니면서 긴박하게 할지, 아니면 슬프게? 두렵게? 그리고 이 이야기를 가만히 서서 해야하나? 아니면 뛰어다니면서? 의자에 앉아서 조종을 하면서? 정말 수십 수백가지의 조합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고 하지만 다른 배우님의 연기를 보면 생각지도 못한 연기를 하는 경우가 있죠.  


 연기학원을 다니면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연기는 정답은 없는데 오답은 있다.' 라는 이야기였죠. 우스갯소리였지만 왠지 와 닿는 말이었습니다. 배우에 따라 해석은 수십 수백가지로 다양할 수 있지만 누가봐도 '아.. 저건 아닌데..?'라는 것들은 오답이라는 이야기겠죠. 물론 더 예술적으로 들어가면 이 말도 반박이 되겠지만 일단 저는 새파란 신인배우니까요..ㅎ 그 많은 오답들을 피해서 관객을 설득하는 것이 공연일 껍니다. 


 어찌보면 쉬울 수 있죠. 오답만 피하면 나머지는 다 정답이라는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연기를 하다보면 그 오답의 웅덩이가 그리 작지많은 않습니다. 내가 분석이나 표현이 안된다면 도저히 지나갈 수 없는 바다만큼 큰 오답의 웅덩이가 생기거든요.. 만약 액션연기를 해야 하는데 몸을 제대로 쓸수 없다면 그 길은 선택할 수가 없는 길이 되는 거니까요. 결국 우리가 연습을 하고 연기의 실력을 키운다는 것은 우리가 가는 길의 오답의 웅덩이를 작게 만들어서 정답의 길로 갈 수 있는 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삶을 살아 간다는 것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성격도, 능력도, 배경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삶의 길을 살아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중간중간 겹칠 수는 있지만 그 길이 아예 일치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삶의 길에 하나의 '정답인 길'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연기가 그러하듯 '오답'만 피하며 길을 걸어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듣기엔 쉬워 보이죠? 하지만 아닐 겁니다. 우리가 비온뒤에 오솔길을 간다고 생각해 보죠. 작은 물웅덩이들은 까치발을 들고 폴짝폴짝 뛰어서 가볍게 넘어갑니다. 조금 큰 웅덩이는 도움닫기를 해서 뛰어 넘어가고 어떤 웅덩이는 중간에 돌이 튀어나와있어 징검다리삼아 넘어갈 수 있죠. 하지만 도저히 건널 수 없는 큰 웅덩이가 있다면..어쩔수 없죠.. 신발 적셔야죠.. 그런데 가다가 바다가 나온다면..? 그 땐 그 오답을 피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강구하게 되겠죠. 연기를 하면서 실력을 키우는 것이 오답의 웅덩이를 줄여서 정답으로 가는 길을 뚫는 것이라고 한다면 삶을 살아가며 여러 능력을 키우는 것 또한 살아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오답의 웅덩이를 작게 만들어 정답의 길로 가는 틈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연기가 공연내내 '관객을 설득'하는 것이라면, 삶은 일생동안 '나를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봐주는 관객은 결국 나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삶을 살아가면서 오답의 웅덩이를 피할 수 없을까봐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웅덩이는 뛰어서 넘어갈 수도 있지만 큰 웅덩이는 차를 타고 넘어간다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어떤 때 그 차는 다른 사람의 차 일수도 있고요. 아무리 넓은 바다와 같은 오답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행기가 꼭 내 비행기일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나아가며 서로의 부족한 점을 메꾸면서 도와주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다양한 능력을 키우며 내 앞의 오답의 웅덩이를 건너는 방법을 마련하고, 다른 사람이 어려워 할 때 함께 도와주고, 내가 어려울 때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내 앞에 높여 있는 넓디 넓은 정답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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