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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리한 호구 Oct 11. 2024

성격 깔끔하게 제모하기

 오늘 레이져 수염 제모라는 것을 하였습니다. 남자가 깔끔한 이미지를 가지려면 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미루기만 하다가 오늘 갑자기 예약을 하고 저질러 버렸죠. 제 친구가 일하는 곳이라 오늘 이야기하고 퇴근후에 다녀왔습니다. 먼저 마취크림을 바릅니다. 바르면서 물어봤죠. "이거 안바르면 많이 아픈가요?" 연고를 발라주시던 분이 잠시 생각하시더니 웃으시며 말해주셨습니다. "발라도 아프고 안 발라도 아파요." 그래도 바르는게 낫겠지.. 하고 듬뿍 바르고 기다렸습니다. 얼굴의 감각이 좀 둔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에 닦고 레이져실로 들어갔죠. 


 제모를 시작했습니다. 구레나룻 부터 시작을 해서 내려오는데 생각보다 별로 안 아픈겁니다. '뭐야.. 별거 아니구먼..' 하면서 옆면을 끝내고 친구가 이야기 했습니다. '턱은 좀 아파..'라고 말이죠. 그리고는 턱과 인중을 하는데 옆면과는 다르게 수염을 몽창 잡아뜯는 느낌이 한번 튀길때마다 드는 겁니다. 왠만큼 통증에 둔감하다고 생각했는데 움찔움찔 할 정도로 아팠습니다. 다행히 못참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에 끝이 났습니다. 턱과 인중에 있는 수염은 굵고 두꺼워서 그만큼 레이져의 에너지를 많이 받아들여서 더 아프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렇게 제모를 하는데도 털의 굵기와 깊이에 따라 제거할 때 통증이 다르더라고요. 그런데 이건 한번으로는 안 되고 몇번을 더 받아야 하고, 또 수염은 자랄 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할 때는 수염이 좀 얇아져서 훨씬 덜 아프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죠. 그렇게 제 얼굴을 깔끔하게 만드는데는 많은 통증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얼굴을 깔끔하게 하는데도 이렇게 시간과 통증을 동반하는데.. 보이지도 않는 우리의 성격과 마음을 깔끔하게 하는데는 얼마나 더 큰 통증과 시간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성격을 더럽게 만드는,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더럽히는 것들은 많은 것들이 있지요. 그 중에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것들은 없애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미뤄왔던 운동, 집안청소, 빨래.. 이런 것들은 언제라도 마음을 돌려서 하기만 하면 해결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마음을 돌리는 것 자체가 어려워 지기는 하지만요. 


 하지만 진짜 어려운 것들은 따로 있습니다. 어릴 적의 트라우마, 어릴때 부터 만들어진 나의 성격에서 오는 어려움들이죠. 건드리기만 해도 마음이 조여와서 없는 척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의 상처들 이야기 입니다. 마치 원래 나와 하나였던 것 같이 깊게 뿌리를 내려 뽑으려고 건드리면 나를 아프게 하는 그런 마음, 경험, 상처들 이야기이죠. 어릴 적 저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을 신경쓰다보니 다른 사람의 평가에 매달리게 되었고, 그 때문에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을 먼저 위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러는 도중에서 이용당했다고 생각하고 상처받는 일도 많았죠. 


 이런 성격을 저는 '남을 위하는 착한 마음'이라고 포장했고 그것이 나를 갉아 먹는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이 문제라 생각하지 않으니 뽑아낼 생각조차 하지 않았죠.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바꾸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그것이 나의 장점이라며 자기 최면을 걸었죠. 그걸 내려 놓으면 지금까지 살아온 나를 통째로 부정하는 듯한 두려움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야 말로 나를 갉아 먹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예민해지고 나의 성격을, 나의 마음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뽑아내는 건.. 정말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수도원에서 10년을 살면서 몇번이고 부질없음을 느끼면서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제모한 수염이 다시 자라나듯, 또 남들에게 기대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죠. 그러다 다시 그 생각을 마음먹고 버리게 되는 사건들이 생기고, 다시 자라나고.. 하는 삶이 반복되고 나서야 지금은 좀 그 생각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글로 써 놓으니 쉬워 보이지만, 그 시간들은 정말로 제게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아까 이야기 했듯이 내가 매달려 있는 생각을 놓는 다는건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가치관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니 지금까지의 나에게 내리는 사형선고 같은 것이니까요. 놓으면 존재를 부정당하고 죽을 것 같은 거부감이 나를 사로잡습니다.  


 그리고 말씀 드렸지만 한 번 마음을 먹고 뽑아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제모를 하고 난 후에 또 수염이 자라듯이 말이죠. 하지만 차이는 있습니다. 한번 버렸던 경험이 있는 상처는 두번째 부터는 조금 버리기 쉬워집니다. 적어도 버렸을때 내가 죽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요. 그 전과 같은 두께와 무게로 내게 다가오지 않아서 얇아진 수염을 제거하듯 점차 뽑아내기 쉬워 지는 겁니다. 그리고, 그 깔끔한 상태가 유지되는 기간도 점점 길어지죠.  


 내 마음에 깊이 뿌리박혀서 나의 성격을, 마음을 지저분하게 하는 어떤 것이 있나요? 뽑아내려고 하면, 아니 건드리기만 해도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는 무언가가 마음에 있나요? 일단 이것 먼저 알아두셔야 합니다. 그런 응어리를 죽을 것 같아서 건드리지 못하고 뽑아내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거나 미워하지 마세요. 그건 원래 힘든겁니다. 작은 솜털은 제거할 때 통증이 없지만 턱의 굵은 수염은 제거할 때 엄청 아프듯이 말이에요. 내 마음에 깊이 박힌 그 상처는 아픈게 당연하고, 그래서 겁이 나는게 당연합니다. 그걸로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그리고 또 하나, 한 번 뽑아 냈다가 다시 돌아가는 자신을 또 탓하지 마세요.. 그거 당연한 겁니다. 매일 면도를 하는데도 제모 한번으로 수염을 없앨 수 없는데 수십년을 품고 있던 마음의 응어리가 한번으로 풀어지겠어요?  


 그런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들을 풀어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게 힘든 것이라는 걸 아는' 겁니다. 그리고 나를 탓하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꼭 생각할 것은 다음에 이 수염이 다시 자라서 제모를 하게되는 그 때는 이번만큼 아프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게 나의 성격과 마음을 지저분 하게 만드는 것들을 한 번, 또 한 번 제거하면서 성공적으로 마음과 성격을 깔끔하게 유지하는 우리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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