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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되어 가는 중입니다만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이야기

by 마당넓은

마음이 무거운 아침이다. 어머니가 며칠 전 읍사무소에 볼일이 있었다. 시간이 한참이 지난 후에 주민등록증이 없다고 하시며 새벽부터 방안을 뒤집어놓고 계셨다.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고 읍사무소에서 주민등록증을 보여주고 그대로 넣어났는데 없다고 새로 발급받아야 되겠다고 분주하게 왔다 갔다 정신을 빼놓으신다.


시간은 7시 반이었다. 9시에 읍사무소 문을 열면 전화를 해서 주민등록증 확인해 보겠다고 일단 아침을 드시라고 했다.


일찍 일어나 끓인 호박 국에 드시는 둥 마시는 둥 밥 한 수저를 말아서 후다닥 드시고는 방으로 쌩하니 들어가 버리셨다.


주방을 정리해 놓고 거실에 앉아있기도 어수선한 마음에 내 방으로 들어와 밀린 책을 보고 있는데

밖이 소란스럽다.


문이 쾅 닫히고 해서 놀라 나가보았더니 남편은 냉랭한 얼굴로 앉아있고 어머니는 기척을 해도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무슨 일 인지도 모르고 두 사람의 눈치만 보고 있다가 방으로 들어오는 남편에게 왜? 눈으로 물었다. 엄마가 갑자기 씻고 나오더니 외출할 준비를 하더란다. "어디 갈 때 있소"하고 물었더니 "읍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증 찾아야 할 것 아니가. 내 혼자 갔다가 올 거다. 너희들은 집에 있어도 된다." 이랬다고 했다.


이러는데 갑자기 짜증이 확 올라왔단다. "이따가 전화해서 물어보고 있다고 하면 찾으러 간다 하는 거 못 들었소 나가지 마소" 이렇게 말했더니 저러는 거 아니가 이런다.


내가 한숨 잠깐 돌리고 있는 동안 그 사이에 이 사달이 났다. 남편은 말은 그렇게 하지만 결국은 엄마가 원하는 대로 뭐든 다 해주면서 말로 마음을 상하게 한다. 말만 이쁘게 하면 좋은데...


어머니 방으로 살짝이 숨어 들어가 본다. "엄마 있다가 전화해서 물어본다고 한 거 잊아뿟어요"

"그래도 내가 가봐야지 그기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 사람들이 다 아나 내가 설명을 해야지"


그랬다. 어머님 연세의 어르신들은 무엇이든 눈으로 손으로 얼굴을 보고 다 확인을 해야 한다.

"그래도 조금만 기다려요 제가 전화해서 확인해 볼게요" "아직 9시 안된 거 안 보이나!"

아들에게 난 짜증을 나한테 뱉어내시고 확 돌아누우신다.


9시가 되어서 어머니 옆에서 전화를 했다. 댜행히 읍사무소에 있었다. 이따가 찾으러 갈 거라는 이야기를 끝내고 전화를 끓고 나니 아침부터 기운이 다 빠져나갔다.


주민등록증 분실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는데 어머니는 여전히 골이나 계시고 남편은 집을 나가버렸다. 또 내 몫이다. 따끈한 생강차를 한 잔 데워서 "어머니 좋아하시는 생강차 드세요" "됐다 안 먹는다" "그래도 드세요 속이 따뜻해지면 마음도 풀리실 거 같은데요"

"아들 성격 알면서 조금만 기다리시지 속상해도 어쩐대요 찾았으니까 되었다 생각하셔요"

"내가 뭐라 카더나 그냥 나 혼자 가서 물어보고 찾으려고 했지" 그러면서 눈물이 한가득 머금고 울먹인다.


남편도 어머니도 다 이해가 간다. 이제 합가를 한지 한 달이 되어간다. 각자의 색깔이 분명한데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좋은데 누가 모자가 아니랄까 봐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다. 며느리, 마누라 새우 등 터지는 소리는 안 들리는지...


등 돌린 어머니, 집 나간 아들 그 사이에 낀 나는 매일이 치열하다. 오늘은 좋고 내일은 싫고 하루에 냉온탕을 오가는 시간들은 언제가 되어야 끝나려는지 이러다가 내 몸속에 사리가 생기는 건 아닌지 오늘 아침은 길고도 길었다.


떨어져 지낸 시간만큼 가족이 되어가는 시간은 멀구나 내일은 별일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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