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의 내 모습을 사랑했다. 상처와 고통에 글 속으로 도망칠 때면 그 안에선 모든 문제가 명쾌해지곤 했다. 그건 이상적인 내 모습이었다. 사람은 고통으로 성장한다 믿었고 그 고통을 글로 쓸 때마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다고 믿었다. 그렇게 점점 내가 아닌 고통을 믿기 시작했다.
늘 내가 주인공이라 믿었다. 소년만화를 동경하여 점점 성장하는 자신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차츰 무너져 갈 뿐이었다. 피폐해지는 정신으로 성공한 모든 사람들에겐 어려움이 있었단 얘길 되새기며 이 아픔은 성공을 위한 고통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달랐다. 그 고통은 그저 내가 만든 고통일 뿐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고통 없인 나아가지 못할 거라 믿었던 건. 언제부터였을까, 작은 아픔에도 매몰되어 내 가슴에 스스로 화살을 박아 넣었던 건. 고통 없인 글 한 줄 쓰지 못하는 내가 작가라 불릴 수 있는 걸까. 결국 전부 내가 만든 환상일 뿐이었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성공하는 내 동경과 이상에 나를 겹쳐 보곤 내가 만든 고통에 나를 가뒀다. 현실에 안주하기 싫었다, 꿈을 잃기 두려웠다. 그래서 내 등에 채찍질을 하며 끔찍한 흉터로 꿈을 되새기곤 했다. 결국 그 모든 고통은 내게서 왔다.
행복을 글로 옮길 순 없는 걸까.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글을 쓸 수는 없는 걸까. 내 글은 항상 나로 가득 차 있다. 아픔과 괴로움을 아름다움으로 포장하는 나르시시즘.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기보다 아픔으로 끌고 가는 글들. 한 꺼풀을 벗기고 본 내 모습이 너무 추악하게 느껴졌다. 나를 사랑해서 세상에서 나를 가장 싫어했던 자신. 항상 내가 주인공이라 생각했는데, 그저 내 세상에 있는 게 나밖에 없는 거였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란 건 대체 뭘까. 모든 아픔도 고통도 상처도 내게서 와서, 사랑조차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나인데. 이 작은 방 밖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난 결국 내게서 나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