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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 Aug 09. 2024

그래도 심장은 뛴다

그런 순간이 있다. 살아 있음에도 살아 있다고 느끼질 못하는 순간들이. 항상 그런 순간들 이후에 공황이 찾아온다. 최근엔 내가 살고 있는 건지도 헷갈릴 때가 있다. 시간은 무의미해지고 내가 나인지조차 인지가 안 되는 날들이 반복됐다. 나는 살아 있는 게 맞는 걸까.


떨림과 답답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평생 나를 괴롭혀 온 공황 장애가 또 내 목을 조른다. 삶이 죽음에서 떨어질 수 없듯 공황을 지울 순 없었다. 언제부터 시작된 고통이었을까. 생명은 태어나면서부터 평생을 죽음에 쫓긴다. 대부분 그걸 느끼지 못하지만 난 태어나면서부터 알 수 있었다. '언젠가 난 죽겠구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한번 죽음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 이후론 걷잡을 수 없어진다. 평생을 죽음에 쫓겨야 한단 걸 안 순간부터 반대로 살아 있음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게 사라진 지금 난 그 애매한 경계에 있는 듯하다.


잠깐이라도 가만히 있는 게 힘들어진다. 몸을 움직이지 않는 순간 살아 있단 느낌이 날아갈 것 같다. 그렇게 다리를 떠는 습관을 얻었다. 멍 때리는 시간조차 두려움으로 바뀌곤 한다. 생각을 멈추면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안감에 대처할 방법이 없어진다. 그렇게 생각하는 습관을 길렀다. 공황과 함께 한 인생의 흔적들이 습관으로 남았다. 그게 만든 내 모습을 난 좋아할 수 있을까. 아마 평생 그러지 못할 것이다. 불안은 불안을 낳기에 내게 남은 흉터들은 내가 공황을 떠올리는 불안으로 남겠지. 나를 사랑할 없는 사람이다.


심장을 조여 오는 답답함 속에서 삶이 멀어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면 들리는 건 오직 심장 소리뿐이다. 삶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 아이러니하게도 심장은 더욱 거세게 뛴다. 마치 나는 아직 살아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게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됐다. 오늘도 난 죽음이 두려워 살아간다. 모든 고통과 불안을 안은 채 빨라지는 심장 박동에 맞춰 하루를 견딘다. 분명 이게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겠지. 난 오늘도 살아있다. 내일도 죽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죽음을 느끼며, 누구보다 살아 있음을 깨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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