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순간이 있다. 살아 있음에도 살아 있다고 느끼질 못하는 순간들이. 항상 그런 순간들 이후에 공황이 찾아온다. 최근엔 내가 살고 있는 건지도 헷갈릴 때가 있다. 시간은 무의미해지고 내가 나인지조차 인지가 안 되는 날들이 반복됐다. 나는 살아 있는 게 맞는 걸까.
떨림과 답답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평생 나를 괴롭혀 온 공황 장애가 또 내 목을 조른다. 삶이 죽음에서 떨어질 수 없듯 공황을 지울 순 없었다. 언제부터 시작된 고통이었을까. 생명은 태어나면서부터 평생을 죽음에 쫓긴다. 대부분 그걸 느끼지 못하지만 난 태어나면서부터 알 수 있었다. '언젠가 난 죽겠구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한번 죽음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 이후론 걷잡을 수 없어진다. 평생을 죽음에 쫓겨야 한단 걸 안 순간부터 반대로 살아 있음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게 사라진 지금 난 그 애매한 경계에 있는 듯하다.
잠깐이라도 가만히 있는 게 힘들어진다. 몸을 움직이지 않는 순간 살아 있단 느낌이 날아갈 것 같다. 그렇게 다리를 떠는 습관을 얻었다. 멍 때리는 시간조차 두려움으로 바뀌곤 한다. 생각을 멈추면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안감에 대처할 방법이 없어진다. 그렇게 생각하는 습관을 길렀다. 공황과 함께 한 인생의 흔적들이 습관으로 남았다. 그게 만든 내 모습을 난 좋아할 수 있을까. 아마 평생 그러지 못할 것이다. 불안은 불안을 낳기에 내게 남은 흉터들은 내가 공황을 떠올리는 불안으로 남겠지. 난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다.
심장을 조여 오는 답답함 속에서 삶이 멀어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면 들리는 건 오직 심장 소리뿐이다. 삶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 아이러니하게도 심장은 더욱 거세게 뛴다. 마치 나는 아직 살아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게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됐다. 오늘도 난 죽음이 두려워 살아간다. 모든 고통과 불안을 안은 채 빨라지는 심장 박동에 맞춰 하루를 견딘다. 분명 이게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겠지. 난 오늘도 살아있다. 내일도 죽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죽음을 느끼며, 누구보다 살아 있음을 깨달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