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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월란 Apr 24. 2022

낯선 타국에서 배우는 외로움

Isolation is not good for me-lemon tree

'유학은 결혼하고 늦게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내가 고등학생 때 네덜란드에서 석사 공부를 하겠다고 하자 엄마는 대뜸 결혼 이야기를 하셨다. 낯선 타국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사람에게 쉽게 의지하게 된다며 차라리 배우자와 함께 유학 생활을 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조언을 하셨다. 18살이었던 나는 '무슨 결혼까지 하고 가야 해~외로우면 좀 참으면 되지'하며 가볍게 넘겼다. 


나는 외로움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외로움이 나에게 틈탈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애정표현이 수시로 오가는 집에서 자랐으며 대학생이 되어 상경한 후에도 매주 본가에 갔다. 서울에 있는 동안에도 전화로, 문자로 가족과 보살핌을 주고받았다. (그만큼 자주 투닥거리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주변에 친구가 얼마나 많은가에 상관없이 나는 가족의 사랑 속에서 외로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만큼 내가 외로움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에 '외로움'이 어떤 느낌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이 감정을 알게 된 것은 부활절 연휴 동안 체코인 친구, Hana의 집에서 그녀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 후였다. 

4박 5일간 폴란드 국경에 가까운, 사과 농장을 하는 시골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5일 내내 더 이상 평화로울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내리 쉬기만 했으니 프라하로 돌아오면 재충전되어 활기찬 하루를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피곤함도 아닌 허망함에 기운을 낼 수 없었다. 이 감정은 낯설어서 도통 알 수 없었다. 일기를 또 한참 쓰다 보니 정답이 나왔다. 이 감정은 '외로움'이다. 


외로움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나였는데 체코에 오고 몇 달째 가족의 보살핌을 온전히 느낄 수 없었으며 보살핌을 나눌 수도 없었다. 그랬기에 난생처음 외로움을 느낀 거다. 나는 그것이 외로움인지 몰랐던 것이다. 그러던 중 Hana의 집에서 70여 일이나 결여되던 보살핌을 '목격'한 거다. 그 애정의 대상이 내가 아니더라도 가족 간에 오가는 보살핌의 분위기 속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큰 딸에게 잔소리를 수도 없이 듣지만 그 딸을 'honey'라고 다정하게 부르는 엄마. 농사로 바빠서 잠깐씩 집에 들르지만 온 집안을 호탕한 웃음소리로 채우는 아빠. 몸만 컸지 누나 말을 잘 듣는 여전히 여린 남동생. 이만하면 충분하다 했는데 옆집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조부모님의 사랑은 또 다르지 않는가? 작고 따듯한 분위기의 집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처음 보는 동양인 여자애에게도 5일 내내 사랑을 주셨다. 

오랜만에 받는 보살핌은 낯설면서도 좋았다. 테라스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이불을 덮어주고 가신다. 집 앞 계단에 앉아 텃밭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남동생이 계단이 차다며 깔고 앉을 인형을 주고 간다. 선물도 받았다. 할머니께서는 종이 봉지에 부활절 과자, 계란, 초콜릿을 담아 노란 리본으로 묶어주셨다. 사과 농장을 하시는 부모님은 Hana는 물론 나에게도 바구니 가득 사과를 챙겨주셨다. 


프라하로 돌아가기 전날 밤부터 갑자기 커진 아쉬움은 프라하에 돌아온 날 밤은 물론 다음 날까지 남아있었다. 지금은 그 아쉬움의 원인을 알기에 괜찮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해외 생활을 할 때 느낄 외로움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은 결국 혼자 사는 거다-라고 교환 생활 중 일기에 여러 번 적었지만 그럼에도 혼자 살 수는 없다. 서로 보살핌을 주고받을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 인(人)'이 이렇게 생긴 이유도 서로 기대어 살아가라는 말 때문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엄마가 배우자와 함께 유학을 하길 바라셨던 것이다. 내 인생 계획 대부분은 석사뿐만 아니라 미래 커리어도 한국 국경 밖이기에 더더욱. 


프라하로 돌아온 날 밤부터 머릿속엔 Fools garden의 'lemon tree' 가사가 계속 맴돌았다. 


Isolation.. is not good for me


가족이 아닌 사람과도 적절한 보살핌을 주고받는 법을 습득해야겠다. 적절한 외로움은 즐길 법도 배워야겠다. 타인에게 나의 곁을 내어주지 않으면 애초에 상대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아 실망할 일도 없어서 당장은 편하긴 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 수는 없다. 내가 나 자신을 충분히 챙길 만큼 단단한 마음을 가짐과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기댈 줄도 아는 유연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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