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2018
첫 트라이얼 날,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식당에 들어섰다.
그 때 아마 트라이얼 시작이 5시였나 그랬을 건데 머뭇 머뭇 대면서 트라이얼로 왔다고 하니까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는데 말투에 묻어있는 차가움이 약간 엥? 싶었다.
난 성질이 더러워서 기분이 나쁘면 확 티가 나는 편인데 이땐 지금보다 더 어렸으니까
표정 관리도 더 못했고 성질도 더 불같았다.
그래, 일단 보자고..
내려갔는데 한산했던 인터뷰 날의 분위기와 달리
시끌시끌 복작복작 식당 안은 사람으로 꽉 차 있었을 뿐더러 바빴다.
정신이 없네 라고 생각하기도 이전에 바(bar) 포지션을 가르쳐주겠다면서
어떤 키 큰 여자분이 나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이 식당에서의 bar는 한마디로 뭐 칵테일 이런거 만드는 바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세팅 되는 반찬도 준비해야 하고, 물도 채워야 하고,
들어오는 컵들 씻어야 하고, 밥도 퍼달라면 퍼야 하고. 한 마디로 홀에서 서빙 하는 것 이외에
모든 잡다한 일을 하는 공간이 그 포지션이었다.
그때까지는 그런 걸 모르고 하도 배울 게 많아서 어버버 하며 배우던 도중
바 너머 한 손님이 나랑 눈을 마주치며 뭔가를 원하는 제스처를 계속 취했다.
그걸 무시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어, 저기 저 손님이 부르시는데..'
그리고 갑자기 날아온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
"그거 신경쓰지 마시고 이거 보세요."
뭐..? 아니, 내가 지금 뭘 들은거지? 저딴 식으로 대답한다고?
한국인이랑 같이 일하고 싶은 생각은 그때부터 아주 싹 가셨고 난 그때부터
그 여자가 가르쳐주는 것에 일부러 반응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기분 나쁜 티를 나 나름 아주 팍팍 냈고 아마 그 여자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한식당은 break time이 없어서 직원들은 한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었고
쉬는 시간은 아마 밥 먹는 시간이 곧 쉬는 시간인 듯 했다.
바에서 가르쳐준 일에 익숙해지려고 이리 뒤적 저리 뒤적 거리는데 또
차가운 말투로 밥을 먹으라길래 앉아서 밥을 먹으며 한 마디도 안 섞었다.
날 가르쳐준 키가 컸던 그 여자 말고 한명이 또 같이 밥을 먹었는데 안경을 낀 (또) 차가운
인상의 여자였다.
말도 안 걸고 자기들끼리 말 하길래 내심 신경쓰였지만 아까 나도 당한 게 있던지라
어차피 말하기 싫었는데 뭐 하며 묵묵히 밥을 먹었다.
근데 그 안경 낀 여자가 '워홀이세요?' 라고 물어보길래 그렇다고 대답했고
뭔가 워홀 같았다며 뭐라뭐라 하는데 난 그것도 기분 나빴다.
아니 워홀 같다는 건 또 뭐야?
여튼 바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일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고 밀려 들어오는 설거지, 반찬 리필, 홀에서 필요한 잡다한 것들을
다 내줘야 했다. 근데 또 그 와중에 바에 부탁을 하면 '네' 라고 크게 대답을 하라고
크게 대답해줘야 알아 들었다는 걸 인식하고 두번 다시 홀에서 부탁 안한다고 했는데
대답 하기 정말 싫었다. 왜?
1.오글거렸다. 아니 뭔 네야 네는..
2.기분 나빠서 더 하기 싫었다.
3.대답 하는 것 자체가 웃겨서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근데 그들은 대답에 굉장히 엄격했고 내가 대충 대답하면 대답 똑바로 하라고 핀잔을 줬다.
이미 내 분노 게이지는 계속 상승 중이었다.
거기에 하나 더 얹어서, 김치를 달라고 하는데 김치를 예쁘게 퍼야 하는데 내가 그들 기준에 안 맞았나보다.
그 키 큰 여자가 갑자기 들어오더니 나 들으라는 듯이 한숨을 푹 쉬면서
'제가 이렇게 안 가르쳐 드린 것 같은데요. 좀 더 신경 써주세요.'
이 문장도 내가 굉장히 미화시킨 거고 내 기억으로는 좀 더 무례한 톤과 내용이었다.
이미 분노 게이지는 한계치를 뚫었고, 난
'그래, 막 가보자 한번. 누가 이기나 해보자, 뭐.'
라는 마음으로 대답도 신경 안썼고 밥을 푼 후 일부러 밥솥 뚜껑도 아주 쾅 하고 닫았다.
(나도 어떤 의미에서 참 대단하다..)
그 안경 낀 여자는 날 노려보듯이 쳐다봤고 난 신경 안쓰는 척 했다.
흥, 그러니까 누가 텃세 부리래? 같은 한국인들끼리 왜 이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난 보란듯이 잘 해보고 싶었다. 니들이 아무리 까대도 대답만 빼고 한번 내가 잘 해볼게 라는
마음으로 바를 어떻게든 끝냈고 다른 여자 직원이 거의 끝날 때 쯤 들어오더니
'오! 아깐 좀 밀리시는 것 같더니 다 끝내셨네요!' 라며 말을 걸었다.
드디어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톤과 새로운 내용으로 말을 걸어온 거 였고
난 바로
"근데 여기 사람들 원래 이렇게 다 싸가지가 없어요?"
라는 굉장히 경우 없는 말을 지껄였더랬다. 그러자 그 여자는 당황하며
"하하.. 제가 이런 건 비밀이라 말 못해요.." 하며 휙-하고 떠났고
이미 그 말에서
'아 여기 뭔가 있네. 역시 텃세로 다른 애들도 고생하는 거네' 라고 느꼈다.
한식당 인것도 싫은데 텃세까지 당해야 하고?
홀에서 서빙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바에서 설거지?
이미 그때부터 한달만 빡세게 일해보자는 나의 굳건한 의지가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