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열심히 하면 알아주더라구요

In 2018

by 글너머

트라이얼을 끝낼 시간만 기다렸고

한식당인것도 짜증나고 자존심 상해 죽겠는데 여기서 설거지나 하고 앉아 있는게

너무 한심했다. 하지만 끝날 시간 쯤 되니 다시 이성이 돌아오면서

'아냐,.. 지금은 자존심 부릴 때가 아니지.' 라는 생각이 차차 들즈음,

나를 인터뷰 하셨던 매니저 두분이 들어오셨다.

뭔가 인사하기 민망해서 인사를 먼저 드리지도 못했고 그 분들도 나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아서

뭐지? 싶었다. 날 가르쳐준 그 여자랑 잠시 어딘가로 가서 얘기를 하는 듯 싶었는데

'아 저 여자가 나 엄청 까겠네.' 라고 생각하고

이거 뭔가 내가 그만두기 전에 잘리겠네 라고 생각하며 쫄아 있었다.


트라이얼이 끝나는 시간이 되자 그 매니저 두분이 날 2층으로 불렀다.

(이 한식당은 꽤 규모가 커서 2층까지 있었다.)

그러고서 오늘 어땠는지,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은지 내 의견을 물어봐줬다.

일방적으로 오늘 이랬다고 들어서 아마 더 이상 여기서 일 하는 건 어려울 거 같다가

아니라 내 의사를 먼저 물어봐줬고 굉장히 의외인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물론 하고 싶다고, 내가 생각했던 것 과는 반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 매니저분들은 들어줄 거 같아서 솔직히 내가 느꼈던 걸 말했다. 그 여자가 그런 식으로

대응했고 굉장히 기분이 나빴으며 그래서 대답을 잘 안했다고.

왜냐면 그 매니저 분들이 그 여자한테 내가 일은 곧 잘 하는 것 같은데 대답을 안하는게 좀 많았다는 식의

피드백을 받았다고 얘기하길래, 내가 그런 태도를 보인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나만 이상한 애가 될 것만 같았기 때문에.


그 매니저분들은 워낙 이 한식당에 트라이얼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오고

직원들이 매번 똑같은 걸 가르쳐야 하는 것, 거기에 곧 그만둘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

굳이 친절하게 대하지 않게 됐다고 자기한테 말하더라며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다고 말했다.

납득이 가게 설명을 들으니 물론 이해 안되는 태도도 있었지만 일도 끝났겠다, 그래도

나름의 오해를 풀고 일을 끝마쳤다.


어찌됐든 1달만 열심히 하기로 했으니까 해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시작했으나

문제는 이 식당은 일에 있어서 배워야 할 단계가 굉장히 많았으며

많이 배운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지고-> 그래서 시간을 많이 받을 수 있다.

고로,

일을 처음 배운 나는 첫 1달은 시간을 많이 줄 수 없었으며-> 1달간 빡세게 돈 벌자는 나의 계획이

약간 어그러진 셈.

트라이얼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적게 받았고 시급이 높아도 첫 1달은 내가 원하는 액수를

벌기에는 완전 무리였다.

이게 계획했던 1달보다 더 일 해야 할 이유 첫번째였다면


두번째는 바로 그 동료들이다. 날 가르쳤던 그 사람들은 내가 2번째, 3번째 트라이얼을 가도

그다지 말을 걸지 않았다. 첫 날처럼 텃세 부린다는 느낌은 없었어도

어쨌든 난 미묘하게 소외된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고 외롭기까지 했다. 뭔가 나만 빼고

다 화기애애 한 것 같은데 나만 남겨진 느낌.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한다.


'그래, 그까짓거 내가 일을 엄청 잘 해 버려서 너네들이 나한테 말 걸지 않고서

못 배기게 해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이미 이 결심 이전에도 그러고 있었지만 이후로 굳이 그들과 친목을 다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뭐 여기 저 사람들이랑 친해지려고 온 것도 아니고 일 하러 온건데

난 나랑 놀아줄 남자친구도 있고 여기 아니어도 아는 한국인들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까

라고 생각하며 일만 엄청 열심히 했다.

일은 바빴지만 쉴 틈없이 바쁜걸 선호하는 나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challenging 하기까지 했다. 단순히 한식당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레벨의

일은 아니었으며 아 이래서 시급이 높구나 생각했으니까.


몸만 쓰는게 아닌 생각하면서 일 해야 홀이 잘 돌아간다는 걸 느끼고 더

일을 잘 해보고 싶어졌다. 마음가짐이 바뀌다 보니까 점점 날 바라보는 시선들이나

생각들이 바뀐다는게 피부로 느껴졌다.

가장 큰 변화였던 건 내 trial을 처음 가르쳐줬던 그 언니(이젠 호칭을 바꿀 수 있다.)였다.

그 언니는 쉽게 말해서 '일 잘하는 사람'을 좋아했다.

그래서 열심히 하고 열심히 한 만큼 잘 따라왔던 나를 고맙게도 일머리가 있다고 생각해줬고

서서히 그 쪽에서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 언니 말고도 안경을 끼고 있던 차가운 인상의 그 언니도 그렇고 점점

모두가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기들끼리 걔 일 열심히 하지 않냐며, 근데 내가 아무한테도 말 안 걸고

일만 하다가 집에 슁- 하고 가버리니까 아마 그들은 내가 궁금했던 것 같다.

이 곳에서 나의 의도치 않은 밀당(?)은 통해버렸다.

그 후 나는 1달이 뭐야, 워킹 홀리데이가 끝날때까지 이 곳에서 일했다.

정말 사람 인생 모르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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