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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너머 Mar 14. 2024

진심은 언제나, 언제나.

ODG를 보고 

나는 어떤 영상을 보고 감동 받으면 그 영상을 되풀이 해서 보는 편인데, 그들 중에 하나가 

유튜브 채널 ODG의 유명한 노래방 시리즈 들 중 신용재 편이다. 

아마 김범수 편도 이제 가끔씩 '순수한 진심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싶은 날' 에 즉흥적으로 다시 찾아 볼 

영상들 리스트에 포함 이다. 


한적하고 어찌보면 무료하기도 한 목요일 오전, 영어 공부를 하다가 아무 이유 없이 김범수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아마 어젯밤에 김범수가 놀라운 토요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끝사랑을 부른 영상의 여파이지 

않나 싶다. 와인 한 잔 하면서 영화를 보는 게 내 인생의 큰 재미지만 가끔씩 소박한 취기와 함께 

기깔나는 가수들의 노래 실력을 뽐내는 영상들을 보는 것 또한 재미가 쏠쏠하다. 

아니다, 재미라고 해야 할까? 재미 보다 대리 만족이랄까. 


각설하고, 

알고리즘으로 타고 타고 김범수 영상들을 보다가 마주하게 된 ODG 채널의 김범수 영상. 

노래방에서 김범수의 존재를 잘 모르는(아니, 어떻게 김범수를 모르지?..라고 하기엔 그래, 내가 나이가 들었지) 학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건데 물론 이 영상의 핵심이 김범수를 잘 모르는 아이들의 

리액션인 것이고 그 누가 김범수가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jaw-dropping 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 영상을 보면서 따라 오는 이상한 대리 쾌감과 함께 난 왠지 모르게 100% 진심으로 김범수의 노래를

들으며 경탄하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면 괜히 눈물이 난다. 

신용재 편은 더하다. 신용재라는 가수는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가수지만 요즘의 학생들은 그를 들어보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그랬고. 노래를 조금 하는 회사원이라고 프레임이 씌워진 채 노래를 시작하는 신용재를

보는 학생들의 얼굴은 볼 만하다. 


그리고 난 운다. 

눈물 짓게 하려고 딱히 의도한 요소가 전혀 이 영상엔 없음에도 불구하고 난 운다. 


난 어느 시점부터 '의도'에서 오는 그 무언가를 안 좋아했다. 

의도가 뻔히 보이는 행동, 사람들에게서 오는 그것이 별로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내가 심술 만빵인 사람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냥 싫었다.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게 몸개그다. 넘어질 의도가 없었는데 몸개그가 돼 버렸다는 전제하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도 좋아한다. 울라고 호소하는 장면이나 대사가 하나도 없지만, 

관객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의도가 하나도 없지만 결국에 내 가슴을 퉁- 하고 쳐버려 울게 만들어버리는.


적어도 나는 '의도'라는 것에 조금의 이해타산 적인 면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편이라서

완전무결성이 그 행동에 조금이라도 결여되어 있다면 난 조금 더 깐깐해진다. 

그래서 나를 눈물짓게 만드는 유일한 소재는 '아이들'과 '동물들'이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얼마나 '순수함'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지 알게 되고, 그래서 왜 그토록

이 세상의 어른들이 절실하게도 아이들의 '동심'을 지키려고 했는지 조금씩 조금씩 깨닫는다. 

살아가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내 사고로, 내 정서로, 내 행동으로, 나에게 이득이 되는 요소들을

조금씩 밀어 넣으려고 하고 결국엔 나도 '어른 1'이, 더 나아가 '나약한 인간 1' 이 되었구나 란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 편인데 아무 '의도' 없는 아이들 혹은 동물들이 보여주는 진심은 한 톨의 불순물도

섞여 있지 않아서 그들의 순수함에 난 무참하게 짓밟히고 눈물 짓는다. 


그들의 '순수함', '이해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습은 '의도'가 없어 더 가차없이 나를 꾸짖는다.

조금씩은 꼬아보고, 조금씩은 심술궃게 누군가를 바라보고, 이해해주지 않던 내 모습이 

그들의 '진심'에 투영되어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될때 그렇게 울컥울컥 하더라구요. 


신용재편에서 신용재를 모르기 때문에, 그가 가수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가능한 세팅이었지만, 

그리고 이게 유튜브 촬영이기 때문에 그런 환경 자체도 그들의 리액션에 영향을 미쳤을지 안 미쳤을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학생들이 보여준 진심은, 왠지 날 울게 했다. 

특히 인상깊었던 한 조그마한 남학생은, 말이 많지 않았다. 리액션도 크지 않았고. 

그 학생에겐 단지 유튜브 촬영하는 아저씨가 어떤 회사원 아저씨가 가수가 꿈이라는데 한번 들어보고

너도 어떤지 의견을 말 해주겠니? 라는 미션을 전달 받았고 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만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신용재가 가수인지 모르는 그 학생에겐 진짜 신용재가 '가수'같았던거지. 

신용재를 바라보는 그 학생의 얼굴을 잊지를 못하겠다. 제스처나 바디 랭귀지가 그다지 크지 않았기에

그 학생이 전달하는 울림이 더 컸던 건 지도 모른다. 큰 표현은 아니지만 이미 그 학생의 눈빛은

그 순간, 그 장소에서 그가 느끼고 듣고 있는 것에 충실함을 증명한다. 


신용재의 노래가 끝나고 어땠냐는 그의 물음이 있기 전까지 수줍게 미소만 짓고 있던 그 학생이

신용재의 물음에 '너무 잘했어요, 가수같이 정말 잘 불렀어요' 에서 난 또 한번 힝- 하고 울어버렸다. 

이 조그맣고 순수한 남학생에겐 그게 최고의 칭찬이란 건 그 누구도 알 수 있었을거다. 

아직 채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이, 배워야 할 감정들이 많은 그 학생에게 아마 누군가의 노래를 듣고

벅차다는 감정은 처음이었을테고, 아직은 좀 더 넓어져야 할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그 학생에게

신용재를 향해 할 수 있는 극찬은 '가수같다'라는 건데 이 또한 얼마나 순수하고 진심인가. 



난 그 누구보다 '진심' 에 대해 '진심'이다. 

'진심'은 누구에게든, 어디에서든, 언제든, 통한다. 그게 꼭 우리가 원하는 타이밍이 아닐지라도. 

두서 없이 썼지만, 낮에 와인 한 잔하고 본 '진심' 에 대한 나의 궤변은 정말로 정말로,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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