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서석지에서 안동 도산서당을 보다
영양 서석지(瑞石池)는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 선생이 지은 연못이다. 연못 옆에는 정자를 두었다. 석문은 퇴계 이황의 삼전(三傳)제자다. 이황의 제자 서애 류성룡과 우복 정경세로 이어지는 퇴계학파 학통에서 석문은 우복 정경세의 제자이다. 결국 석문은 퇴계 제자의 제자의 제자이다. 석문은 광해군의 실정과 당파싸움을 보고 벼슬자리에 나가지 않았다. 은둔 속에 학문과 제자 양성에 힘썼다. 서석지는 석문이 1613년에 만든 별서(別墅) 정원이다.
서석지는 조선 시대 전남 보길도 세연정과 담양 소쇄원과 함께 민간 3대 정원 가운데 하나로 이름나 있다. 또 현재 유홍준 교수가 추진하는 '<역사문화대장정> 대한민국 대표 문화유산 100곳을 따라 읽는 역사에서 걷는 역사로!'에 포함됐다. 영양에서는 서석지와 가까운 산해리의 국보 '봉감모전석탑'도 100곳에 들어있다.
서석지는 연못인 연당과 정자 '경정'으로 구분돼 있다. 평지에 연못을 파서 물을 끌어들였고 땅속 바위들은 자연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이 바위에 이름을 붙였다. '선유석', '통진교', '희접암', '어상석', '옥성대', '조천촉', '낙성석' 등으로 맹자와 중용 등에서 따왔다. 서석지의 이름은 연못을 팔 때 땅속에서 상서로운 모양의 돌이 나왔다고 붙여졌다. 60여 개의 흰 바위가 보는 이로 하여금 오묘한 느낌을 들도록 한다.
서석지 곁에는 주인의 거처인 주일재(主一齋)가 있다. 주일재는 연못이 아닌 바로 앞 사우단(四友壇)를 바라본다. 일반적인 '매, 난, 국, 죽' 사군자의 배치가 아니라 난초가 소나무로 바뀐 '매, 송, 국, 죽'의 정원이다. 연못에는 여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연을 심었다.
그런데 서석지는 안동 도산서당의 연못 배치와 유사하다. 도산서당 바로 앞에 작은 연못 '정우당(淨友堂)이 있다. 정우당에도 여름에 예쁜 연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정우당 옆에 절우사(節友社)가 있다. 퇴계 선생이 절개 있는 벗을 흠모하여 심었다고 한다. 이 벗이 바로 '매, 송, 국, 죽'으로 서석지의 사우단과 같다. 석문 선생은 도산서당의 연못 정우당과 절우사를 본보기로 서석지를 만들었다.
서석지는 자연경관과 함께 퇴계 선생의 사상도 함께 담겨있다. 서석지에 바로 붙은 정자 '경정(敬亭)'이 그것이다. 경(敬)은 마음을 집중해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이야기한다. 바로 퇴계학파에서 가장 중시하는 사상 개념이다. 퇴계 선생은 성리학 학문을 경(敬)의 실천으로 완성할 수 있다고 했다. 퇴계의 경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석문 정영방은 자신의 정원에 정자를 짓고 '경정(敬亭)'이란 이름 붙였다. 자기 스승의 스승의 스승인 퇴계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이다. 서석지를 찾은 관광객들은 연당의 아름다움과 함께 퇴계의 경 사상을 사색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석문 정영방은 서석지를 '내원(內園)'으로 불렀다. 그리고 서석지 바깥에 있는 '선바위'와 '자양산', '자금병' 등 16곳을 '외원(外園)으로 명명했다. 석문은 외원 16수를 시로 지어 영양 산천의 아름다움과 유유자적한 선인의 삶을 노래했다.
석문 16수 가운데 하나인 '선바위'는 입석으로 불린다. 선바위와 함께 기암괴석 절벽 '자금병'은 안으로 깍아 지르고 위를 향해 빙빙 돌아 마을을 품은 것처럼 하여 병풍을 둘러친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자금병과 선바위 사이에 하천이 있지만 예전에 연결돼 있던 절벽을 마치 누군가 뚝 자른 듯한 느낌을 준다. 이곳을 자른 사람이 바로 비운의 장수 '남이 장군'이다. 남이 장군이 민란을 평정하기 위해 영양에 왔다가 산맥을 보고 또다시 민란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산허리를 뚝 잘랐다는 전설이 현재 전해지고 있다.
서석지 외원의 중심지인 입석 '선바위'는 해와 달 정기와 사람의 정기를 모아 하늘에 올리는 신선바위로 알려져 있다. 소원을 발원하면 들어준다고 한다. 실제 신선이 하늘을 향해 서있는 듯한 모양으로 태극의 꼭지점에 선바위가 위치한다고 한다.
선바위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석보면 두들마을은 전통 문화마을이다.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이 입향한 곳이다. 이시명도 퇴계 선생의 삼전(三傳) 제자이다. 퇴계 제자 가운데 학봉 김성일의 제자인 경당 장흥효의 제자이다. 석계 이시명은 1640년 병자호란을 피해서 영덕군 창수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그의 후손인 재령 이씨의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조선시대 1899년 이곳에 국립 병원인 광제원(廣濟院)이 들어서면서 '원두들, 원리'라고 불리다가 지금은 두들마을로 불린다. 두들마을에는 석계고택과 석천서당 등 전통 고가옥 30여 채가 있어 1994년 문화마을로 지정됐다. 또 최초의 한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을 쓴 정부인 장씨 유적비와 소설가 이문열의 광산문학연구소(2022년 화재로 소실)가 있다.
경당의 제자인 석계는 후에 경당의 사위가 된다. 그의 부인 장계향은 당시 시와 서, 그림 등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고, 학문 경지도 상당히 높아 여성 군자로 불렸다. 그리고 그는 10남매를 키웠는데 아들 7명이 모두 학덕이 높은 학자로 키워냈다. 특히 삼남 갈암 이현일은 높은 학문적 성과와 함께 벼슬도 이조판서에 오르면서 어머니 장계향이 '정부인'의 품계를 받았다.
장계향 선생이 쓴 '음식디미방'은 75세 때 며느리와 딸에게 전래의 음식 조리법을 물려주기 위해 저술한 한글 요리책이다. 음식디미방 이전의 요리서는 대부분 한문이었지만 이 책은 여성이 쓴 최초의 한글 조리서로 알려져 있고 146가지의 당시 음식을 만드는 법이 상세히 서술돼 있다. 경북대학교 도서관에서 소장 중인 이 책은 '수운잡방'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 태평양 지역 목록'에 올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영양군은 이 두들마을에 숙박과 음식문화 체험이 가능한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을 운영하고 있어 일반 관광객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상주-영덕 간 고속도로를 타고 동청송영양IC에서 내려 30분 정도면 두들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고즈넉한 전통 문화마을을 살핀 후 장계향 교육원에서 숙박하고 다음 날 '선바위'와 '서석지'를 둘러본 후 수비면 '자작나무숲'까지 1박 2일 코스를 즐길 수 있다. 또 영양 수비면은 아시아 최초로 국제밤하늘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별보기'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