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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동 호서비 Jun 01. 2023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백석과 자야'

'내 사랑 백석'을 읽고서


▲ 내 사랑 백석 표지 김자야가 쓴 '내 사랑 백석' 2019년 3판 ⓒ 이호영


시인 백석과 기생 자야의 짧고도 영원한 사랑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안동의 한 작은 도서관에 들어선 순간 '백석'이란 표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백석은 일제강점기 때 토속적인 언어로 시를 쓴 시인이다. '백석' 이름을 보는 순간 '한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잡았다.     


자야는 본명이 김영한이고, 일제강점기 때 진향이란 기생이다. 자야는 시인 백석이 붙여준 아호라고 한다. 김영한은 서울시 성북동 사찰 '길상사'의 원 주인이었다. 길상사는 사찰이 되기 전에 '대원각'이라는 서울 3대 요정 중 하나였다. 대원각을 운영한 사람이 김영한이다. 김영한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동한 나머지 법정 스님께 대원각을 사찰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서울 부자가 살고 대사관저가 많은 성북구 땅 7천여 평과 한옥 건축물 등 천억 원대의 재산을 무상으로 시주했다. 김영한은 스님으로부터 '길상화'란 법명을 받았다.      


김영한은 "천억 원이란 돈은 큰돈이지만 내가 사랑하고 평생 그리워한 백석 시인의 시 한 줄의 가치만도 못하다 '라고 평가했다.     


백석의 시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시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이다. 1938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그 대상은 『내 사랑 백석』에서는 자야, 김영한 본인이라고 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날인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이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날이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리 없다

언제벌서 내 속에 고조곤히와 이야기한다

산곬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덜어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날이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1937년 겨울에 쓴 최초의 원문, 길상사 '길상화' 안내판에서-    




▲ 시인 '백석' 사진 '내 사랑 백석' 책자에 실린 '백석' 사진 ⓒ 이호영


백석과 자야의 만남은 일제강점기 북관(北關)의 땅 함흥에서 이뤄진다. 1936년 요릿집 '함흥관'에서 영생고보 영어 교사였던 백석과 기생 자야는 첫눈에 반한다. 멋쟁이 시인 총각과 타관 객지에서 잠시 머물던 기생은 이날 운명적인 만남을 시작으로 영원한 사랑을 한다.     


그 후 두 사람은 3년간 함흥과 서울에서 함께 살다시피 했다. 하지만 기생 출신과 결혼할 수 없다는 어르신들의 완고한 반대로 이들은 결혼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책에서 백석은 부모의 강요로 3번 결혼하고도 자야에게 돌아오려고 한다. 마지막 3번째 결혼 후 본처가 아닌 자야와 함께 중국으로 떠나려 했지만 자야는 기생이란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백석의 요청을 거부한다. 해방 후 평안도 정주로 돌아온 백석과 서울에 있던 자야는 남북이 갈리는 이데올로기에 막혀 평생 만나지 못하고 영원한 이별을 한다.     


책 속에서 자야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 속의 등장인물 '나타샤'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등장인물 '아내'도 자신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생략)......     





▲ '내 사랑 백석' 책자 속의 김자야 사진 김자야 사진과 소개글 ⓒ 이호영


이별 후 자야는 평생 동안 꿈에서 만날 정도로 백석을 그리워했다.      

꿈에서나마 내 옆에 누웠다가 "나 잠시 나갔다 오리다" 하고서는 금방 사라져 버렸다는 아쉬운 문장이 여러 차례 나온다. 그들이 살았던 청진동 한옥을 찾아 골목에 멍하니 서서 "이대로 언제까지라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게요"라며 중얼거리기는 대목에서 늘그막까지도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는 여인의 슬픔이 느껴진다.      


하지만 책과 달리 현실에서 시인 백석과 자야의 사랑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의 대상도 자야가 아닌, 친구와 결혼한 통영 출신 신여성 ' 박경련'이고, 백석을 연구한 학자들은 백석과 자야를 연결하는 어떤 단서도 백석의 자료에서 나오지 않았다며 허구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 내 사랑 백석'은 1995년에 초판 발행됐고, 2019년 김자야 입적 20주기를 앞두고 새로운 장정 3판이 출간됐다. 책을 읽는 내내 사랑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백석과 자야의 사랑은 진위를 알 수 없다. 소설이라면 허구라고 할 수 있지만 자야의 고백과 회고로 쓰여진 산문이다. 진실 여부는 글을 읽는 독자의 몫이지만  '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도 고귀하다. 책의 내용이 진실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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