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정부 24를 통해 구 호적등본(현 제적등본)을 떼 봤어도 우리 조상의 국적이 ‘일본’이라는 표시를 찾을 수 없었다. 앞서 쓴 '김문수 말대로 호적등본을 떼 봤다' 기사 댓글에서 일제시대 호적을 떼라는 요구가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행정기관에 가서 직접 제적등본을 떼 봤다. 나의 제적등본은 정부 24에서 뗀 서류와 일치했다.
행정기관에서 뗀 제적등본
1902년생인 할아버지와 그 윗대인 증조부의 제적등본을 요청했다. 그 결과 할아버지 제적등본은 1980년 작성본과 1973년 작성본으로 발급됐다. 1980년 본은 가로 쓰기, 1973년 본은 세로 쓰기이고 한글과 한자로 작성됐다.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사셨던 증조부 제적등본은 세로 쓰기이고 모두 한자이다. 손으로 직접 쓴 서류임이 확인된다.
한자로 된 증조부 제적등본의 주소는 경상북도 선산군 00면 00리로, 현재 나의 본적 주소와 일치한다. 한자 실력이 미천하여 제대로 읽을 수 없으나 연도 표기를 보면 모두 명치(明治), 대정(大正), 소화(昭和) 일본 연호가 확인된다. 증조부께서는 명치 12년(1879년)에 혼인으로 분가하신 것으로 기록돼 있다. 또 할아버지는 명치 35년(1902년)에 태어나 대정 8년(1919년)에 혼인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소화 11년(1936년)에 고향에서 태어났음을 제적등본을 통해 확인된다. 하지만 구 호적등본인 제적등본 상으로는 김문수 장관의 말대로 우리 조상의 국적이 ‘일본’이라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명치, 대정, 소화 등 일본 연호가 사용되고 있을 뿐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여서 당연히 일본 연호가 표기됐을 뿐 이것으로 우리 조상의 국적이 ‘일본’이라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증조부 제적등본. 손으로 쓴 한자여서 읽기 힘들다. 명치(明治)란 일본 연호가 보인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호적’을 찾아봤다.
“호주(戶主)를 중심으로 하여 그 집에 속하는 사람의 본적지, 성명, 생년월일 따위의 신분에 관한 사항을 기록한 공문서. 2008년 호적법 폐지에 따라 폐지되고, ‘가족 관계 등록부’가 이를 대체하게 되었다.”로 나온다.
호적등본은 이 ‘호적 원본의 전부를 복사한 증명 문서’이다. 본적지 중심의 인적 기록은 있어도 ‘국적’은 표기돼 있지 않다. 김문수 장관 말과 달리 호적등본에 국적은 표기되지 않는다.
일부 사람들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고 일본어, 한자, 일본 연호가 사용됐으니 당시 우리 국적이 ‘일본’이라고 김 장관 말에 동조한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조선인을 자국민으로 여겼을까? 전문가들은 당시 일본 자국의 국적법을 한반도에서는 시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인과 한반도 조선인을 철저히 구별했다는 얘기다. 국적법에 따라 일본 국적자가 되면 일본 국적을 버리는 것이 가능해져 자칫 통제 불능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이 필요할 때 즉 군대 동원, 징용, 손기정 선수처럼 올림픽 출전 등에서만 ‘일본 국적자’로 취급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증조부 제적등본에 실린 할아버지 기록. 명치(明治), 대정(大正), 소화(昭和) 등 일본 연호가 보인다.
또 일본과 우리가 한 나라였다면 조상들은 일본 땅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을까? 같은 나라, 같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야 되지만 우리 조상들은 ‘도항 허가증’이 있어야 일본 땅에 갈 수 있었다. ‘도항 허가증’을 통해 일본 내 조선인의 숫자를 제한한 것이다.
지난 6일 한겨레의 보도가 눈에 띄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발언 등에 대해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의 반박이었다.
“국적은 이름뿐이고 (당시 한국인은) 국민으로서의 권리가 없는 일본인의 노예였다”
“불법 기간인 일제 강점기에 ‘우리는 일본인이었다’고 우기는 사람의 뇌 구조는 한국인이 아닌 일제 하수인의 뇌 구조이다.”
필요할 때만 일본인이었다는 지적이다. 그는 미국 흑인 노예가 미국 국적이라고 해도 노예였던 것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이승만 정권 등 역대 정부는 1910년 ‘한일 강제병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 윤석열 정권의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회 질의에서 “우리 선조들의 국적은 당연히 우리 한국 국적이며, 일본 국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건 정말 오산”이라고 말해 김 장관과 정반대 입장에 섰다.
이번에 발급받은 제적등본은 모두 4부이다. 일반 시민이 현재 행정기관에 요청하여 발급받을 수 있는 제적등본은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일제 강점기 때 다른 호적등본이 있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증조부 제적등본까지 발급받는 데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이 아니고 현재 우리 국민 대다수는 일제 하수인의 후손이 아니다. '호사카 유지'가 아닌 우리가 해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