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속에 아이가 산다

by 리하




우리는 괜찮은 어른이 되려 분투하며 산다.

타인의 실수에는 너그럽게 품어주면서도,

정작 내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에는

"다들 그렇게 살아"라며 차갑게 입을 막아버리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덮어둔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 깊은 곳에서 숨죽이고 있다가,

어느 고요한 밤 예고 없이 우리를 무너뜨릴 뿐.


나는 당신이 이제는 자신의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래 묵혀둔 마음을 빨랫감처럼 꺼내어, 햇빛 아래 조용히 널어둘 수 있었으면 한다.


나무는 뿌리가 썩으면 생을 마감하지만,

병든 잎이나 꺾인 가지는 스스로 떨어뜨릴 줄 안다.

아픔은 무조건 끌어안고 있는 게 아니라,

더 이상 나를 갉아먹지 않도록 놓아주는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묵은 상처들은 당신의 뿌리가 아니라, 그저 언젠가 떨어뜨려야 할 '병든 잎사귀'일뿐이었음을.


그 잎을 떼어낸 자리에 비로소 새살이 돋고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긴다는 것을 믿었으면 한다.


우리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허겁지겁 구두를 신고 앞만 보며 달려왔지만, 누구나의 마음속에는 아이가 하나 산다. 누가 볼세라 마음속 가장 깊은 곳, 벽장 안에 꽁꽁 숨겨둔 어린아이가 그곳에 남아 있었다.


그 가엾은 소녀는 누군가 데리러 오지 않으면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고여 있다.


우리가 어른의 계절을 몇 번이나 갈아치우는 동안에도, 소녀는 물 새는 벽장 안에서 곰팡이 핀 벽에 기대어,

축축해진 옷을 말릴 수도 없는 채로 당신이 두고 떠난

그날의 온도 속에 영원히 박제되어 있다.


우리가 그 아이를 데리러 가지 못한 것은

그저 두려웠기 때문이다.


또다시 과거를 들쑤셔 애써 두고 온 그 아이의 슬픈 얼굴을 다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우리는 긴 시간 등을 돌리고 서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진정한 자존은 이처럼 시간의 흐름에서 소외된 채 웅크린 아이의 손을 다시 잡으러 가는 데서 시작된다.

이제는 그 벽장문을 열고 아이를 꺼내어주자.


따뜻한 물로 해묵은 슬픔과 먼지를 깨끗이 씻기고,

젖은 옷 대신 보송한 새 옷을 입혀주자. 빗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다정히 말려준 뒤, 포근한 이불로 감싸 갓난아이를 품듯 품에 안아 재워주는 것.


그렇게 어린 영혼이 다시 온기를 되찾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나 자신을 구원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화살을 내 등으로 막아내며

"이제는 내가 너의 어른이 되어줄게"라고 나지막이

읊조리는 결기. 그것은 내 존재의 원형을 지켜내기 위한 가장 단단한 맹세다.


이토록 처절하게 나의 상처를 직면하는 일은,

역설적이게도 나라는 존재를 가장 눈부시게 피워내는

개화(開花)의 과정이다.


어두운 벽장에 갇혀 있던 아이를 이끌고 나와 마침내

찬란한 햇빛 아래 세우는 것. 눅눅했던 슬픔을 털어내고 그 자리에 볕을 들이는 수고로움이야말로 나를 진정으로 아끼고 가꿔내는 숭고한 원예다.


지는 꽃이 계절의 순리를 완성하듯, 우리 역시 스스로의 아픔을 마주할 때 비로소 가장 나다운 향기를 머금은 채 온전히 피어날 수 있다.


상처 입은 나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언제나 나의 편에 서는 다정함. 나만의 단단한 보호자가 되기 위한 마음을 채비하고 길을 나선다.


당신이 스스로의 손을 놓지 않는 한,

세상 그 무엇도 당신을 아주 주저앉히지는 못한다.

병든 잎을 떨구고도 기어이 다음 봄을 밀어 올리는 나무처럼, 그 어떤 바람에도 뿌리째 흔들리지 않는 존재처럼,


당신의 자존은 결국 스스로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는 세상이 바라는 어른이 아닌, 나를 위한 어른이 될 수 있기를.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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