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로부터

by 리하




세상의 모든 원예는 심는 것보다 솎아내는 일에서

그 성패가 갈린다.


영양분을 독식하며 다른 가지의 생장을 가로막는

무성한 잡풀이나, 이미 회복 불능 상태로 썩어 들어가는 가지를 잘라내지 못하면 나무 전체의 생명령은 서서히 사그라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아무리 화려하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관계일지라도, 그 뿌리가 나의 자존을 갉아먹고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닌 '기생'뿐이다.


진정한 용기란

누군가를 내 삶에 들이는 일이 아니라, 나를 서서히

파괴하는 존재에게 단호히 작별을 고하는 일이다.


그 대상이 비록 내가 나보다 사랑했던 사람일지라도,

나의 원형이 무너져 내린다면 그 사랑은 이미 생명력을 잃은 조화(造花)에 불과하다.


삶은 때때로 누구를 곁에 두느냐보다,

누구를 밀어내느냐에 의해 그 결이 결정된다.


우리는 관계를 맺는 법은 도처에서 배우지만,

정작 관계를 끊어내는 법에 대해서는

아무도 일러주지 않는다.


그저 인내하는 것이 미덕이라 믿으며, 나를 갉아먹는

인연 앞에서도 서툰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다.


우리는 때때로 걸음을 멈춰야 한다.


바깥의 소음이 아닌, 내 영혼의 안부를 묻기 위해.


설명할 수 없는 허기가 나를 잠식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아닌 타인의 손길이 내 영혼의 결을 서서히 검게 물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균열은 언제나 안쪽에서부터 시작된다.


오래전 생겨났으되 너무 익숙해
상처인 줄도 모르고 품어온 금.

나는 그것이 언제 틈이 되었는지,
어디서부터 썩음이 번지기 시작했는지
이제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당신이 '사랑'이라 부르는 그 관계가,

정말로 당신을 피어나게 하고 있는가.

혹여 그저 나의 생명력을 조금씩 앗아가며

당신의 계절을 겨울에 묶어두고 있는가.


꽃이 지는 것이 실패가 아니듯, 관계가 끝나는 것 또한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답게 보내주겠다는 결연한 의지다.


아무리 깊이 뿌리내린 인연이라 할지라도,

그 존재가 나를 시들게 하고 나의 뿌리를 썩게 만든다면 그것은 '운명'이 아니라 '독'이다.


독이 온몸에 퍼지기 전에 환부를 도려내는 것은 잔인한 일이 아니라, 살기 위한 유일한 방책이다.


당신을 아프게 만드는 사람을 끊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대개 그를 향한 연민이나, 홀로 남겨질 두려움 때문이다.


뱀이 허물을 벗어던지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뱀에게도 생살이 찢기는 듯한 통증이며,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유일한 막을 스스로

제거하는 고독한 투쟁이다.


가족이라는 허물,

사랑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질 때

당신이 느끼는 그 지독한 공포와 죄책감은

지극히 당연한 생존의 신호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낡은 허물을 벗지 못한 뱀은 자신의 몸이 커질수록

그 껍데기에 조여 결국 숨을 거둔다.


타인을 향한 무분별한 관용은 때로 나 자신을 향한 가장 가혹한 폭력이 된다. 나를 무너뜨리면서까지 지켜내야 할 관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당신을 아프게 하는 그 인연은 당신의 보호막이 아니라, 당신의 성장을 가로막는 ‘질식사할 껍데기’ 일뿐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 질긴 인연의 껍데기를 찢고 나와야 한다.


나를 찾는 과정 속에서 이토록 버려야 할 것이 많을 줄은 몰랐다.


그럼에도 해야만 한다.


진정으로 나를 애정한다는 것은,

나를 아프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격리할 용기를 내는 일이다.


가지치기를 마친 나무는

잠시 초라해 볼품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잘려 나간 자리가 아물고 나면,

나무는 비로소 자신에게 허락된 햇살을 온전히 제 것으로 누리며 이전보다 더 단단한 목질을 갖게 된다.


당신의 삶도 기어이 그러하기를 바라며, 나를 해치는 인연의 굴레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오직 당신만의 향기로 채워질 고요한 빈자리를 환대할 수 있기를.


끊어낼 용기를 내는 순간, 당신은 비로소 타인의 계절이 아닌 '나의 계절'을 살기 시작할 것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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