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아파트 단지 앞에는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 난 크지 않은 길목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곳엔 오늘 아직 설익은 봄 한 조각이 걸려 있었다.
오래 묵은 마음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고서야 이제야
눈에 들어온 풍경이다.
그간 얼마나 오랫동안 땅만 보고 다녔는지 모른다.
땅을 보고 걷다가 문득 내 모습이 자신감 없어 보일까 봐, 그것을 의식해 일부러 고개를 들고 초점 없이 앞을 보고 다녔다.
나 스스로의 기대를 채우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신경의 줄을 끊어내자, 내 발바닥이 지면을 딛는
감각이 선명해졌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예민한 성격을 지녔던 나는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고 생각했고, 아이답지 않게 조용한 고립이 주는 평온함을 좋아했다.
어린시절
엄마는 내가 어떤 상황이나 관계에 대해 불편함을 털어놓으면 입버릇처럼 내가 예민하고 성격이 별나다고 말씀하셨다.
명절이나 잔치날, 가족끼리 모여 밥을 먹다가도
엄마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는
"도대체 네 코는 누굴 닮았을까? 우리 집에는 돼지코가 없는데..."라고 말하곤 했다.
초등학생 때의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밥을 먹다가도
숟가락을 내려놓고 방에 들어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럴 때면 늘 그렇듯 방문 밖에서 세트처럼 딸려오는
대사가 있었다.
"어후, 또 삐졌냐. 그냥 한 말인데 쟤는 왜 저렇게 성격이 예민해."
나는 우는 소리가 들리면 더 아픈 비난을 받을까 봐
항상 소리 없이 울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내가 사회에 나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성격이 유연하고 둥글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내가 예민함을 숨기기 위해 애써 타인에게 맞춰주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둥근 성격을 지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초등학교 때부터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코를 매만졌고, 어느 순간 코가 오뚝하게 솟았다.
대학교에 다닐 때쯤에는 성형외과 상담까지 두어 번 가기도 했다. 다행인 건 방문했던 병원 모두 수술을 권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뒤로는 거울 속의 내 코가 예뻐 보이기까지 했다.
엄마는 스물셋에 첫 애를 낳았다.
살기 위해 나를 친정 엄마 손에 맡기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며 이십 대부터 사십 대의 대부분을 보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엄마는 그때 자식을 챙기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자주 말하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과거를 나에게 투영한다.
서른이 넘은 나의 사소한 부분까지 개입하고 지적하며 여전히 엄마의 역할을 이어가려 한다.
예전에는 그런 참견에 상처받고 숨 막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나는 엄마보다 이미 더 어른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엄마는 나보다도 속이 텅 비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왜인지 엄마가 짠하게 느껴졌다.
덩치만 커진 아이가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채우려
허공에 팔을 휘두르는 것만 같아서.
그 뒤로는 엄마가 뱉는 말에 상처받지 않았다.
내 존재의 원형은 이제 더 이상 엄마의 말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그걸 인정하고 나니 드디어 여유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여유는 거저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옥죄던 익숙한 소음들로부터 나를 기어코 구출해 낸 뒤에야 얻을 수 있는 귀한 전유물이었다.
문득 내가 삼십대라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나 부모의 그늘에 휩쓸리지 않고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즐기기에 딱 좋은 나이라서.
완성되지 않아도 좋다.
꽉 짜인 문장보다 여백이 많은 낙서가 더 자유롭듯,
내 삶도 이제야 제멋대로 그려질 준비를 마쳤다.
빼곡한 아파트 건물들의 그림자 사이로, 비워진 자리에만 햇살이 드나든다. 나는 나를 옥죄던 그늘을 치우고, 그 빈자리에 오전의 볕을 채워 넣기로 했다. 그 여유의 틈새로, 나는 비로소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