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수평선 위로 희미한 분홍빛이 번지기 시작할 무렵
마을의 작은 고기잡이배 하나가 조용히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하루의 표정을 갖추지 못한 바다는
낮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물결은 잔잔했고,
햇살은 은박지처럼 얇게 수면 위에 펼쳐졌다.
바다는 마치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고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배에 오른 한 어부는 노를 밀어 바다로 나갔다.
노가 물을 가르자 잔물결이 부드럽게 퍼졌다.
그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바다는 참으로 너그러워. 이곳은 늘 빛으로 가득하지.”
그에게 바다는 견딜 수 있을 만큼만 흔들리는 세계였다.
두려움은 햇빛 속에서 희미해지고,
물결은 손을 내밀면 닿을 것처럼 온순했다.
그에게 바다는 평온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마을에는
밤이 깊어질 때 바다로 나가는 또 다른 어부가 있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그는 배를 띄웠다.
마을의 불빛이 하나둘 꺼지고,
하늘이 먹을 풀어놓은 듯 어둠에 잠기면
그는 조용히 바다로 향했다.
밤의 바다는 낮과 전혀 다른 숨을 쉬고 있었다.
바람조차 검게 들리는 밤,
물결은 방향을 알 수 없이 일렁였다.
수평선은 사라지고, 하늘과 바다의 경계도 흐려졌다.
오직 먼 곳의 등대만이
흔들리는 시야를 붙들어주는 작은 중심처럼 서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중얼거렸다.
“바다는 믿을 수 없는 곳이야.
이곳은 언제든 나를 삼킬 준비를 하고 있지.”
그에게 바다는 시험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심연의 물결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고, 사방을 둘러싼 어둠은 사소한 소리마저 위협처럼 부풀려 놓았다.
그에게 바다는 늘 경계해야 할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둘 중 누가 맞고 누가 틀린 것일까.
사실 이들 중 오답자는 없다.
여명의 바다를 본 이는 평온을 말하고,
암흑의 바다를 건넌 이는 공포를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같은 바다를 두고 다른 시간을 건넜을 뿐.
바다는 어느 쪽의 증언에도 항의하지 않는다.
그저 시간에 따라 얼굴을 바꿀 뿐이다.
어둠이 물러난 자리의 바다는 빛을 띄워 보내고,
밤의 그림자로 덮인 바다는 깊이를 드러낸다.
한 사람은 반짝임을 기억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림자를 기억한다.
우리 또한 저마다 다른 시간의 바다를 건넌다.
누군가는 비교적 잔잔한 시절을 지나왔고,
누군가는 격랑을 먼저 배웠다.
누군가에게 세상은 넉넉한 기회의 공간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끝없이 시험하는 무대였다.
하지만 문제는 종종 여기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자신이 건넌 바다의 시간만을
세상의 전부라고 믿기 시작한다.
내가 본 수면의 빛이 곧 바다의 본질이라 여기고,
내가 겪은 파도가 세상의 기준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치명적인 착각 속으로 들어간다.
확신은 때때로 빛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그것은 시야를 좁히는 장막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경험한 만큼만 세상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 이해를 ‘진실’이라 부르는 순간
타인의 경험은 틀린 서술이 되어버린다.
우리가 틀렸다고 단정했던 말들.
어쩌면 그것들은 거짓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건너지 못한 시간의 기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