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머물다 가는 것들

by 리하




저녁 무렵,

하루가 달라도 식탁 위에 오르는 접시는 늘 같다.

오래전부터 쓰던 것인데, 특별한 장식도 없고,

어떤 음식을 담아도 크게 어색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손이 간다. 나는 그것을 오래 사용해 왔다는 사실을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다만 최근에야 가장자리의 얇은 금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부터 있었는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이 생긴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금을 손끝으로 따라가 보았다.

생각보다 깊지 않았고, 그렇다고 완전히 가벼운 상처도 아니었다.


'언젠가는 가장자리에 손을 베이겠구나'

당장은 아니겠지만, 오래 쓰다 보면 그렇게 될 것이라는 걸 안다. 어쩌면 내가 먼저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물건은 늘 그런 식으로 자취를 감춘다.


집안을 둘러보니 비슷한 것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꺼내 입는 셔츠,
가방 속 작은 주머니에 늘 들어 있던 펜,
언젠가 한 번쯤 다시 읽을 것 같아 정리하지 못한 책들.


그 물건들에는 분명 내가 머문 시간이 묻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래 남을 것 같지는 않다.


어떤 것은 시간을 견디지 못해 마모되고,

어떤 것은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밀려난다.

사라지는 데 거창한 이유는 없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과 저녁을 먹고, 아이를 품에 안고,

배우자와 하루를 정리하는 말이 오갈 때.

비슷한 장면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그것이 매일 이어질 것처럼 느낀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고장 난 시곗바늘처럼

그 자리에 멈춰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가끔은,

우리가 함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조용히 스친다.

그래, 어쩌면 우리는

찰나에 머물다 떠나는 손님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혼란스럽게도, 그것은 함께한 시간이었다.

세월이라는 강물을 붙잡아 둘 수 있는

전지전능함 같은 건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 깊숙한 어느 한편에 저장할 수는 있다.


명절에 남은 음식을 얼려 두었다가 다시 꺼내 먹듯,

함께 보낸 순간들을 마음 어딘가에 고이 접어

남겨 두고 싶기 때문이다.


그때의 말투,

순간 속에서 말하지 않아도 알아차렸던 마음,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는 방식.

나는 그 잔상을 오래도록 간직할 것이다.


내가 소유한 물건이 결국 영원히 내 것이 아니듯,

나를 둘러싼 사람들도 언젠가는 세상에 왔다 간 줄도 모르게 모습을 감추거나, 혹은 내가 먼저 떠날 것이다.


이 깨달음은 처음엔 나를 두렵게 했다.
그러나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본래 끝이 있다고 생각해 보면, 그 덧없음이 오히려 더 소중하게 폐부에 스며들었다.


모두가 잠시 머물다 언젠가 사라질 거라면, 남는 것은 우리가 나눠가졌던 그때의 온기를 기억하는 일뿐이다. 행복과 불행이 어느 한쪽에만 속해 지속되지 않듯이 삶과 사랑도 마찬가지다.


영원하지 않기에 기억 속에 더 선명하게 각인시켜야, 살아가다가 한 번쯤 꺼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서로를 더 바라보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이루어온 작은 조각들을, 오늘 조금 더 깊이 눈에 담아둔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