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평범한 하루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by 리하




인간의 뇌는 위험을 먼저 감지하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부정성 편향이라고 부른다.


오래전 우리는 작은 위협 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늘 긴장한 채로 살아야 했다. 어둠 속의 소리, 낯선 기척, 평소와 다른 표정 하나까지도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남았다. 그 기억이 아직 우리 안에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열 번의 평온한 날보다 한 번의 불행을 더 또렷하게 기억한다.


칭찬보다는 비난을 오래 붙들고, 무사히 지나간 수많은 하루 대신 상처가 남은 하루를 자주 꺼내본다. 행복은 분명 있었는데, 불행이 더 선명해서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행복은 대개 조용하다.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세게 두드리지 않는다.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손을 흔들지도 않는다. 대신 우리 곁에 그림자처럼 스며들다 사라지곤 한다.


고로 우리는 자주 번쩍이는 도파민을 결핍하고는 한다.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도, 감정이 서로를 할퀴는 다툼도, 그렇다고 가슴을 밀어 올리는 벅찬 일도 없었던 날.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아마 내일도 어제 위에 포개진 하루,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


우리는 그런 날을 쉽게 ‘그냥’이라고 부른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아무 의미도 없던 것처럼 덮어버린다. 그러나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는 건 오늘을 온전한 나로서 무탈하게 살아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사고도, 견디기 힘든 상실도, 삶의 궤도를 틀어버릴 균열도 없었다는 뜻이다.


가슴을 단숨에 무너뜨릴 만한 문장도 없었으며 심장을 꺼뜨릴 기별도 오지 않았다. 오늘도 내 마음이 완전히 부서지지 않았고, 소중한 사람과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받지 않았다는 뜻.


그 사실은 생각보다 사소하지 않다.

우리는 대단한 성취를 이룬 날에만 스스로를 칭찬한다. 타인에게 인정받았을 때, 큰 결과를 만들어냈을 때, 비로소 “잘했다”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어쩌면 별 탈 없이 하루를 살아낸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한 일일지도 모른다. 눈을 뜨고, 하루를 건너고, 다시 잠자리에 드는 것. 무너지지 않고 이만큼을 지나온 것.


불행은 언제나 시끄럽고 또렷해서 기억 속에 깊은 자국을 남긴다. 반면 행복은 잔물결처럼 고요히 번져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잔물은 모여 강이 된다.

잔잔히 번진 하루, 파도 없이 지나간 날. 고르게 숨 쉬는 하루들, 우리는 그 순간을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지만, 그것들이 모여 지금의 내 삶을 짜 올렸다.


행복이 반드시 번쩍이는 폭죽처럼 터져야 한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일상을 과소평가하게 된다.


그러나 삶의 대부분은 기념일보다 평일이 더 길다. 극적인 장면은 짧게 타오르고,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리고 그 이어짐은 우리를 지탱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가진 행복을 느끼지 못한 채, 손에 쥐지 못한 것들만 갈망하느라 평생을 결핍하면서 살아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보다 더 큰 가난이 또 있을까


오늘도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오늘을 무사히 건너왔다는 뜻이다. 그것은 우리가 자주 놓치는 기적과도 같다. 우리는 매일 빛나는 장면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된다. 대신 조용히 하루를 지나면 된다.


크게 흔들리지 않고,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오늘의 끝에 서 있는 것. 그래서 나는 가끔 아무 일 없었던 날에는 내 안에서 낮게 속삭인다. 오늘도 괜찮았다고. 오늘도 잘 살아냈다 그리고 그 말은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건네는 다정한 확인이다.


행복은 어쩌면 발끝 아래 놓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찮다며 접어둔 날들 속에, 이미 충분히 머물러 있었는지도 모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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