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 하루만 유독 낡아 보일까?

by 리하




사람들은 늘 앞서가는 발걸음의 속도를 사랑하며 산다. 뒤처지지 않으려, 혹은 정해진 목적지에 닿으려 숨 가쁘게 지면을 박차고 나가는 것만이 삶의 증거라 믿었다.


그렇게 앞만 보고 질주하는 동안,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풍경은

형체도 없이 뭉개진 채 뒤로 밀려나곤 했다.


하지만 가끔은 의도치 않게 발걸음이 멈춰지는 순간이 있다. 평소와 다름없는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습관적으로 손에 쥔 휴대폰 속 작은 사회를 들여다본 아침이었다.


그곳엔 이미 정점에 다다른 이들이 승전보처럼 아래로 쏟어내는 서슬 퍼런 성공의 문장들이 가득했다.


눈이 시릴 만큼 화려한 색채로 채워진 누군가의 인생이 전시되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그 조각들을 하나둘 짚어내다 보니, 나의 하루는 채 시작되기도 전에 낡아버린 기분이 들었다.


어제와 똑같은 공기였으나, 어제와 똑같았기에 예고 없이 지독한 무력감이 방 안을 메웠다.


고개를 돌려봐도 숨 쉴 곳은 마땅치 않다.

서점에 놓인 자기계발서들은 약속이나 한 듯 '멈춤'을 죄악이라 말한다. 새벽을 깨우지 못하면 금세 게으름뱅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성공을 향한 무용담은 장황하고, 스스로를 갈아 넣으라는 협박은 서늘하다. 그 활자들 틈에서 나는 자꾸만 지워진다. 도태될지 모른다는 공포를 동력 삼아 달릴 것을 종용하는 문장들 앞에서, 나의 존재는 한없이 낮은 곳으로 침잠하며 자꾸만 작아졌다.


먼발치의 찬란한 도착지들이 나를 내려다보며 묻는 듯했다. 너는 지금 어디쯤이냐고. 비교는 언제나 나를 가장 먼저 시들게 만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높은 곳을 갈망할 때보다, 낮아질 때 더 많은 것을 배우는지도 모른다는 것.


아득한 정상을 우러러보느라 빳빳하게 세웠던 고개를 숙여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소란스러운 소음에 가려졌던 나직한 마음의 기척들, 길가에 낮게 엎드린 이름 없는 풀꽃의 강인함, 그리고 맹목적인 질주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나만의 정직한 보폭 같은 것들 말이다.


당신은 시든 게 아니라, 계절을 기다리는 중이다

내 안의 꽃줄기는 오직 나만의 온도로 밀어 올려야 한다. 무리하게 먼저 피려다 계절을 잘못 맞춘 꽃은, 채 차오르지 못한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금방 얼어붙거나 시들기 마련이다.


조급함에 등 떠밀려 놓쳐버린 나만의 계절을 다시 살피는 일. 그것이 멈춰 선 자리에 고이는 가장 눈부신 풍경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무력감에 발이 묶였다면 기꺼이 그 고요 속에 머물러보자. 이 멈춤의 시간이 나라는 존재를 더 깊이 투영해 보는 맑은 거울이 되어주길 바란다.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란 결코 없다. 들꽃은 들꽃의 자리에, 바위는 바위의 자리에 저마다의 이유로 놓여 있듯, 우리 역시 누군가가 규정한 성공이 아니더라도 각자만의 고유한 무늬를 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결을 가진 사람인지, 내 안에는 어떤 빛깔의 쓸모가 숨어 있는지 찬찬히 더듬어 보는 일.


그 귀한 마주침을 위해

우리는 잠시 멈춰 서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멈춰 있는 이 시간이, 사실은 거짓된 속도에 지친 나를 다시 나에게로 데려다주는 가장 담담한 귀갓길임을 믿는다.


오늘도 나는 나를 채찍질하는 대신, 숨을 고르며 쉬어갈 여유를 주기로 했다. 무너지지 않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나의 오늘은 충분히 온전했다.



[작가의 한마디]

"남들보다 늦은 것 같아 조급해지는 마음이 실은 내 계절에 맞지 않는 추위를 견디느라 내는 비명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혹시 오늘 마음이 낡아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자신을 채찍질하는 대신 쉬어갈 여유를 선물해 주세요. 오늘은 무언가 해내야 한다는 부채감을 내려놓고, 나를 다시 나에게로 데려다주는 이 다정한 고요 속에 머물러보려 합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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