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김밥을 삼켜버렸다

아무렇지 않은 나를 무던하다 말할 수 있나

by 김조금

오늘 아침 늦게 출근했다. 비교적 자유로운 출근 시스템이라 늦게 출근해도 큰 무리가 없다. 사실상 알바생 신분으로 다니는 회사이기 때문에 더욱 뭉그적대는 것 같다. 고용주가 엄마라서 그냥 욕 한 번 먹으면 끝난다. 나오기 전에 어제의 김밥을 먹었다. 팀원 이모가 말아오셨던 김밥. 아무래도 김밥이라서 그런지 먹다 보니 약간 쉬었나? 싶었다. 이미 몇 개 입에 집어넣기도 했고 배부르려 하는 찰나라 안에 들어간 어묵과 계란만 빼먹고 나머지는 버렸다.


때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편이다. 음식에 뭐가 들어가 있어도 쓱 빼내고 먹어버리거나 크게 아무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어쩔 때는 기분이 확 나빠지고 먹기 싫어진다. 기준점이 모호한 건지 기분에 따라 다른 건지 알 수가 없다. 귀에 노래 한 구절이 스쳐 지나간다. 나도 날 몰라.


며칠 전 병원을 다녀왔다. 저번주에 일본을 다녀오면서 정신없는 스케줄에 약이 끊겼었다. 약의 효과 중 하나가 식욕을 무난하게 만들어주는 기능이 있었다. 그게 끊기니 한국으로 돌아오고 끝없이 무언가를 먹고 싶어 했다. 이유 없는 불안함은 더욱 식욕을 돋웠다. 괜히 군것질을 해서 헛배가 찬다. 더부룩한 위에 스트레스를 받는 건 당연지사다.


일요일 저녁 친구네 집에 초대받아 친구 여자친구까지 여섯이서 대하를 왕창 먹었다. 부모님께서 막 살아있던 대하 5키로를 바로 쪄오셨다. 철이라 그런지 조금만 먹어도 물리는 새우는 전혀 물리지 않고 끝없이 들어갔다. 특히 머리에 있는 내장은 정말 녹진하고 맛있었다. 친구 여자친구와 나는 머리까지 먹지만 친구네는 머리를 잘 안 먹었다. 덕분에 머리를 왕창 넣은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대하 5키로에 라면 7봉까지. 그렇게 먹고도 집 와서 편의점표 인절미 빙수를 혼자 다 먹었다.


그런 나는 사실 평소 먹는 양은 그리 많지 않다. 심하면 두 세입 먹으면 먹기 싫어질 정도다. 하지만 그 지점을 지나서 더 배부를 때까지 푸지게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병원에 가서 약이 끊기면서 나타난 증상들을 얘기했다가 '아니 김밥까지 한 줄을 다 먹어버렸거든요.'라고 하니 '김밥은 원래 한 줄... 을?'라는 답을 들었다. 원래 김밥 한 줄을 다 먹는 게 당연하지 않냐는 묵음처리와 함께. 맨날 많이 먹고 잘 먹는다는 얘기만 듣다가 그런 반응은 새로웠다. 모 연예인의 프링글스 한 통 다 먹어요를 말한 당사자가 된 기분. 예, 저도 제가 소식하는 줄 몰랐어요.


성인 ADHD 때문인지 우울증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음식 욕구가 가득하던 내가 약을 먹으면서 생각보다 나의 음식 적정량이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많이 먹지 않아도 된다는 걸 배웠다. 적게 먹으니 다음 식사 시간까지 소화가 잘 되었고 마음도 편안했다.


약을 먹지 않으면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가 식욕이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여러 가지 방면으로 나타난다. 그중 하나는 구매욕이다. 일본에서 일정 중 여러 편의점을 들르며 숙소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나왔고 그대로 이행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각자 본인 걸 조금씩 사면서 돌아가는데 같이 간 무리 중 하나가 나보고 장을 보냐고 하더라. 맞는 말이다. 두 봉지 가득 채워서 들어갔으니까. 편의점에서. 식욕과 구매욕이 동시에 나타난 순간이었다.


눈앞에 있고 가지고 싶거나 먹고 싶을 땐 계속 눈에 아른거린다. 참으면 막 속상하고 그랬다. 이제야 지금은 참음의 미학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컨트롤이 어려운 건 사실이다. 아, 지금도 회 먹고 싶다. 편의점 일본 소주랑 함께. 위는 소식을 추구하지만 내가 왜 대식을 일삼았겠는가. 먹는 걸 참 좋아한다. 좋아하는 걸로 스트레스받을 정도로.


모으는 걸 좋아하지만 돈을 썼을 때 기분이 나쁜 날도 있다.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나의 해결법은 정말 갖고 싶은 것들만 최대한 추리는 거였다. 이건 안 사면 후회할 거다 싶으면 바로 리스트에 넣는다. 하지만 약간 욕심인가 싶어지면 참으려 노력한다. 문제는 그 경계선이 모호해서 안 샀다가 후회하거나 샀다가 후회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번 일본 여행에서도 아, 사 올걸 하는 게 있었다. 아, 사 올걸.


소식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입맛이 예민한 편이다. 많이 먹지 않으니 한 끼를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라는 의견이 많이 보이더라. 어린 시절 명절만 되면 나물이나 잡채 등 간은 내가 볼 정도로 맛에 예민한 편인 나는 웬만한 건 아주 맛있지 않더라도 잘 먹는 편이기도 하다. 모에서 도를 달리는 중간이 없고 모순으로 가득 찬 얘기 중인 거 맞다.


화를 낼 때도 스스로만의 짜증의 기준이 있는 건지 평소에는 잘 화를 내지 않는 편이지만 스스로가 화가 많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사람에 관해서도 남들이 질색하는 표현이 서툰 사람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다. 하지만 남들한테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나에게는 별로인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본질이 별로라고 느껴질 때도 있고 어떠한 습관이나 말투가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또 거리를 둔다. 엄청 싫어하거나 미워한 적도 있다. 계속 마주쳐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적을 아군으로 만들어라 스킬을 사용한다. 은근 유용하다.


늘 하기 싫어와 하고 싶어가 동시에 부딪히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황에 자주 놓인다. 의사 선생님은 양 주먹을 마주대고 보이면서 서로 힘껏 밀어내면 어떻게 되는지 아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대답하자 움직이지 않는다는 답을 들었다. 결국 상황을 회피하게 되는 거다. 회피형 인간인 나는 늘 양립하며 싸우느라 제 풀에 지친다.


동시에 어떤 면에서는 방이 더러워도 무던할 만큼 미련 곰탱이 같을 때도 있고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 때문에 예민해져서 안 건드리는 것도 있다. 미련하게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고 나는 제자리걸음인 경우가 허다하다. 공책에 선 그으는 것조차 삐뚤어진 곳 없이 그으려던 어릴 적의 내가 떠오른다. 지금은 삐뚤어져도 모른 척한다. 사소한 거에 예민해지면 제일 스트레스받는 건 나다.


글을 적다 보니 알겠다. 나는 한없이 예민한 사람이 맞다. 그 예민한 사람이 스스로 힘드니까 하나둘씩 무시하기 시작한 거다. 남에게 관해서는 본인의 알 수 없는 선을 넘지 않는 이상 두루두루 잘 지낸다. 하지만 그게 귀찮고 에너지 소모가 커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최대한 멀리한다. 내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기에도 바쁘다. 회사에 내 또래가 없는 걸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모들 사이에서 막내로 예쁨 받는 게 최고다.


오늘은 작업실에서 전공 연습을 할 예정이다. 소리에 민감해서 짜증 나더라도 나의 못난 모습을 마주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예민한 걸 버리느라 솔직해지지 못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그 중간선을 잘 찾으면 본연의 나를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부디 좋은 쪽으로.